시로 여는 일상

신병은 우물, 안도현 우물

생게사부르 2017. 6. 19. 00:07

신병은


우물

 

우물이라는 말 속에는 갈증을 해소하는 동그란 하늘이 있어 나는 금방 물 가 꽁지 팔랑대는 새소리로 앉아요. 새소리 뽀글뽀글 물방울소리로 떠오르는 물가에는 버드나무 잎 띄우는 일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아요. 두레박도 이제 퍼 올리지 않아요.

둥근 것을 보면 부드러워 그 안에 안기고 싶어

하늘 한 자락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빛의 기울기로 깊이를 헤아려도 백일동안 여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볼우물의 기억마저 증발되어 버린,

그 곳
이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요
스스로 깊어지는 법도 잊어 버렸어요
부풀어 오르던 하늘도 새소리도 없는 수면엔 생각없이 물의 주름만 번지고 있어요

 

 

 

안도현

 

 

우물

 

 

고여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가끔씩 두레박이 내려온다고 해서

다투어 계층상승을 꿈꾸는 졸부들은 절대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

누군가 목이 말라서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

 

 

철철 피 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은

고여 있어도 어느 틈엔가 새 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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