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소란 다음에

생게사부르 2017. 6. 20. 00:14

다음에/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 문장 웹진' 2013. 5월호

 

*        *        *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재를 희생시키는지

' 이 다음에 맛있는거 먹자, 이 다음에 보러오자, 이 다음에 만나자...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

 

그래서 애인보다, 남편보다 이 다음이 ' 나를 달래고, 데리고 가고'

 

' 현재 present'가 왜 '선물 present'인지를 되새겨 보면

현재를 유예시키기 보다  '지금 now' 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 지금(now), 여기(hear)'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도록

권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쁜 현대인

그러면서 정작  ' 정말 소중한' 뭔가를 놓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현재 자체가 곧 '삶'임을 너무나 자주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재를 희생시켜 얻고자 하는 것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혹 타인의 동기나 사회적 기준이 정해 놓은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을 몰아 부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외형적 성취나 경쟁심이 지나쳐 자신을 좀 먹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의심해 볼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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