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
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 문장 웹진' 2013. 5월호
* * *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재를 희생시키는지
' 이 다음에 맛있는거 먹자, 이 다음에 보러오자, 이 다음에 만나자...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
그래서 애인보다, 남편보다 이 다음이 ' 나를 달래고, 데리고 가고'
' 현재 present'가 왜 '선물 present'인지를 되새겨 보면
현재를 유예시키기 보다 '지금 now' 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 지금(now), 여기(hear)'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도록
권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쁜 현대인
그러면서 정작 ' 정말 소중한' 뭔가를 놓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현재 자체가 곧 '삶'임을 너무나 자주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재를 희생시켜 얻고자 하는 것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혹 타인의 동기나 사회적 기준이 정해 놓은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을 몰아 부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외형적 성취나 경쟁심이 지나쳐 자신을 좀 먹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의심해 볼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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