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마경덕 놀란흙

생게사부르 2017. 6. 3. 09:28

마경덕


놀란


뒤집힐 때 흙도 놀란다
쟁기 삽 괭이 호미 쇠스랑 포클레인...누가 제일 먼저 괭잇날에
묻은 비명을 보았을까
낯빛이 창백한, 눈이 휘둥그런

겨냥한 곳은 흙의 정수리거나 잠든 미간이거나,

흙의 표정을 발견한 누군가의 첫 생각, 그때 국어사전에 놀란흙
이라는 명사가 버젖이 올라갔다

흙의 살붙이, 지렁이 땅강아지 개미 두더지
그것들이 가랑이를 헤집어 집을 짓고 길을 내도 놀라지 않는다
나무뿌리, 바위뿌리에도 덤덤한 흙이
사람만 보면 왜 그리 놀라는지,

흙의 나라
태초에 그 곳에서 태어난 사람을 닮은 흙의 심장은 사람을 잘 알
고 있다
공사장 주변, 포클레인이 파헤친 땅
매장된 산업폐기물을 껴안고 까맣게 죽어 있었다
싱싱하던 흙빛은 흑빛이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아버지는 흙집으로 들어가
더는 놀라지 않고,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자주 놀란다


'사물의 입' 가람토.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