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흙 속 뿌리가 삽을 물고 놓아 주질 않는다.
흙 속 돌들이 삽을 물고 놓아 주질 않는다.
그의 주검 곁 방향을 잃은 개미 등으로
잡풀 그림자가 희끗희끗 옮겨 다니고
우리를 받아 뼈를 앉힐 땅도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않는다. 않는다.
만물은 저마다 제 눈을 뜨고
하늘이 겨운 그림자를 낮은 곳에 널어 말린다.
울음이 삶에 쉬 섞이지 않는 이 순간
까치와 쓰르라미 개밥풀 둥근 나무의 많은 나뭇가지
개구리 파리 벌 모두 어우러져 바람을 일구고
부러진 나뭇가지 마른 잎에도 쉬고 있는 생물이 보인다.
바람이 빗기는 산. 그는 누워 있고
내일도 정직할 모습은 주검뿐인가.
산을 올라 오는 것들이 모래로 날린다.
구석에 이렇듯 묻혀야 할 우리의 몸뚱이와
주검이 이토록 밋밋해서
이다지도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인가. 알수 없는 우리는
가면서 어디로 휘청 거리는 것인가.
흙 속 뿌리는 삽을 물고 놓아 주질 않고
허공에 빠진 내 손은 무겁고 공허하고
다시 보는 하늘도 강도 허공에 머리를 두고 신음하는
구나
세상은 우리의 그 무엇도 섣불리 받아주지 않고
아카시아가 긁은 내팔에 지금 고이는 것
살아 있는 것에는 눈물만 질벅하고
조은
1960. 경북 안동
1988.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 ' 무덤을 맴도는 이유' " 따뜻한 흙"
산문집: '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 벼랑에서 살다'
' 조용한 열정'
* * *
삶의 지난한 여정 중에 시인은 ' 죽음'에 대한 통찰은 일정 부분 통과했네요.
그런 연후에 ' 삶'에 대한 자세를 가다듬었을 것이니
' 주검이 이토록 밋밋해서
이다지도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인가. 알 수 없는 우리는
가면서 어디로 휘청거리는 것인가
(중략)
세상은 우리의 그 무엇도 섣불리 받아주지 않고'
아카시아에 긁힌 팔
' 살아 있는 것만도 눈물이 질벅' 할 밖에요.
' 내일도 정직할 모습은 죽음뿐'이더라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땅이 주검을 순순히 받아 주도록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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