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효숙 버려진 운동화 한 짝, 요절주의

생게사부르 2017. 5. 31. 08:32

김효숙


버려진 운동화 한 짝


아파트 앞 횡단보도에
목격자를 찾는다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흰 스프레이 자국 곁에 버려진
피 묻은 운동화 한 짝
청년이 횡단보도에서 트럭에 튕겨질 때
어둠속 떠돌이 개 외에는 본 이가 없다고 한다
가로수는 놀라 물든 잎을 거의 다 떨어뜨렸다
가좌동 안길에
사고 뒷소문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이리저리 구르던 운동화는
중앙분리대 화단 철쭉 곁에 얹혀져
철쭉이 지키고 있지만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
운동선수였다는 청년은
이제 운동화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스프레이 자국이 섬뜩한데
주검을 타고 넘어
쌩쌩 달리는 차들
무심하게 밟고 가는 사람들


 

요절주의

 

 

고속도로 터널 입구 ' 요절주의' 표지판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빠르게 가는 길이

삐끗하면 천국으로 내닿기에

도로공사 직원들은 연민이 남달라서

날마다 로드 킬 당하는 고라니 청설모들 짜안하여

요절시키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했다

가뜩이나 출산율도 낮은데

아까운 젊음들 잘 간수하라는 건가 했다

새파란 젊은이 넷을 관광버스가 덮쳐

형체없이 흩어 버리지 않았나

찢어진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는데

이십대가 이십대를 요절내고 말았다

젊음들아 아찔한 속도는 장가를 가야 해소 된단다

여자와 아이들이 재잘대는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하고 따뜻하지

예초기에 요절한 쑥부쟁이가 안쓰러워

푸른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뒷날 다시 그 곳을 지나며

터널 입구 노란선 그은 턱을 넘을 때

덜컹하고 차 꽁무니가 들리는 걸 보고 알았다

'요철주의' 속도를 줄이세요

 

 

 

2014. <시와사람> 으로 등단

시집 '나무는 지금'

 

 

 

*      *      *

 

 

시창작교실 문우이자 여고선배님 시집에서 뽑은 작품입니다.

두편 다 교통사고와 관련있는 소재네요.

 

긴 세월 숙성한만큼 한편 한편이 다 만만치 않아

오래 닦은 내공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가득했습니다.

 

첫 시집 출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