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조은 그늘

생게사부르 2017. 6. 4. 06:59

조은


그늘


숲을 서성거린다.
숲은 하늘이 얼룩진 허공에서 뿌리를 틀고 있다.
바람은 본능으로 숲을 밟고 지나간다.
(숲이 거대하면 두려움이 거대하다)
문득문득 떨어져 나가는 나뭇가지를 물고
세상은 언덕 너머 너머

우리들 몸은 그늘로 꽉 차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거대하게 부풀며 숲은 한 몸같이
꿈틀거린다. 비대한 물소리를 따라 도는
풀들의 얽힌 허리 또한 난무하고
이 곳에서 풀들은 일생 동안 정수리가 날카롭다.
멈춰 있는 물처럼 이토록 몸이 굳어 있는 나는
한 순간도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늘만 일렁이며 눈빛을 바꾼다.
당신과 내가 만날 때는 그늘이 겹쳐진다.

태양은 오늘도 머리맡에 단내를 풍기고
하늘은 퇴색한 채
얼마나 완고하게 과거로 기우는지
하늘이 누렇게 탈색된 허공 속에는
드물게 뻗는 크고 울퉁불퉁한 뿌리에 부딪쳐
온종일 추락하는 것들과 그 아래로
썩고 있는 새의 주검들.
경직된 몸을 천천히 회전하며
깊고 더러운 것들을 뿌리로 감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