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헌
저녁무렵
사물이 또 다른 사물에게 발을 씻겨주는 시간
오후 일곱시의 빨래가 바람에게
뒤꿈치를 담았던 신발이 발목에게
세상 모든 어둠있는 것들의 無名에게
발을 씻긴다는 것은 생의 밑바닥 핥고 난 뒤의 위무 같은 것
살 속 깊이 박혀 솟구치지 못하는 비를 일으켜 세우는 입김 같은 것
오래된 창문에 알을 스는 벌레들
들리지 않는 물소리 밟고 주워 오는 낙과 몇 알
달빛 수로 따라 조심스레 손 내미는 버드나무 그림자가
저 건너 마음을 벗어 놓고 마음 안쪽을 부비며 들어오는
그대 가지런한 무릎에 시린 이마를 묻는
한 봉지가 또 다른 봉지에게 못 다 채운 밥을 덜어주는
문학마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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