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교육/심지현
오빠 내가 화장실에 가다가 들었거든, 내일은 아줌마가 우리를 갖다 버릴 거래. 그 전에 아줌마
를 찢어발기자. 우리가 죽인 토끼들 옆에 무덤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야. 토끼 무덤을 예
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빠의 즐거움이잖아. 아줌마는 가슴이 크니까 그건 따로 잘라서 넣
어야겠다. 그년의 욕심만큼 쓸데 없이 큰 젖, 여긴 아줌마가 오기전 부터 우리 집이었어.
난 절대 쫓겨나지 않을 거야.
너 시들지 않은 새엄마를 시기하고 있구나. 아버지가 무능해서 고생하는 예쁜 나의 새엄
마, 그녀가 나를 버려도 괜찮아. 개처럼 기어가서 굶겠다고 말하면 그만인 걸,그게 안 먹히
면 그녀의 가슴을 빨고 엄마라 부르면 되지. 잠 설치는 아이를 달래는 척 밤마다 날 찾을지
도 몰라, 자꾸 커지는 나를 본다면 오히려 그녀는 아이가 되겠지. 아, 못 생긴 엄마가 떠나
면서 주고 간 예쁜 우리 새엄마!
* * *
계모 이야기는 ' 콩쥐 팥쥐' 나 ' 장화 홍련'전에서 이미 유감없이 그 심술이 발휘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 수준과 여성의 경제력이 높아진 이후
어쩔수 없이 사별을 했거나 잘못 만난 인연을 일찍 청산하고 새로운 각오로 재혼 한 분들
중에는 친모 친부 이상으로 잘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친부모와도 서먹하고 반항하고 튀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재혼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의지와 노력
새로 가족이 된 자녀들에게 얼마만큼 관심과 애정을 주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요즘은 아이를 학대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어른들의 얘기가 부쩍 많습니다.
이전이라고 없었겠습니까만 남여성별, 어른 아이 차별없이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데
세상의 변화에 무디고 성장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어른들, 미성숙한 채 나이만 먹어 어른이 된 사람들
성장기 아이들의 문제는 곧 어른의 문제이고 자녀 문제는 곧 부모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우리 집의 개새끼가요~' 중 3남학생이 말 끝에 했던 개새끼가 나중에 아버지인 걸 알았습니다.
' 그래도 니가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이미 어린 나이부터 엄마 없이 자라던 남자애였습니다
엄마같이 마음 푸근하던 담임선생님이 잘 챙겨줘서 그런지 가출을 했는데도 기특하게 학교는 나왔습니다.
아침밥을 제대로 못 먹었을 아이에게 급한대로 빵과 우유를 사 먹여 가며 데리고 있는 형편이었지요
어느 하루 점심시간, 학생들이 담임교사를 데리러 와서 전하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 샘! 00 아버지가 찾아 왔는데요. 가출해서 집에 안 들어 온다고 계단에서 바로 이단 옆차기를 해삐던데요'
' 우리집의 미친년이 지 맘대로 학원 끊어 놓고 내 보고 학원 빼먹는다고 지랄이잖아'
중학교 1학년 딸 아이가 친구에게 하던 말입니다.
아직 앳딘 티가 가시지 않은 천진하고 곱상해 보이는 중 1 여학생 얘기에 등장하는 '미친년' 은 엄마였습니다.
그래도 그 이전 세대에서는 학교에서 학생이 잘 못해서 부모를 호출하면 아이들이 반발했습니다.
자기가 잘 못 했는데 왜 부모를 부르냐는 것이지요. 지 잘못이 알려 지는 것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정서적으로 부모님을 편드는 분위기였습니다. 지가 잘 못 했는데 왜 부모님이 학교 불려와서
교사에게 야단을 맞는 것 같은 분위기
싫고 자존심 상한다는 의미였지요.
혹 아이들이 다투는 중에 상대 부모님을 들먹였다가 싸움이 크게 확대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그만큼 아이들의 정서가 황폐해졌다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물질적으로는 풍족한데 ' 부모' 혹은 '형제'라는 가족애가 영 빈약합니다.
사회생활 최초집단이 가정이고 보면 '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은 있어야
다른 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다른 어른을 어른으로 대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2014. 경향신문 신춘 문예 당선작입니다.
시에 담긴 메세지가 논리적, 도덕적으로 맞지 않아도 ' 참말' 을 하려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당돌함이 다소 불편하지만 싱싱한 발화로서의 매력이 있어 '불편하면서 동시에 설렌다' 고 평하네요.
정면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삶, 세계의 잔혹함과 비극성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당당함
비록 상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언어들이 감상에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이 시가 더 살아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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