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문성해
담장이건 죽은 나무건 가리지 않고 머리를 올리고야
만다
목 아래가 다 잘린 돼지 머리도 처음에는 저처럼 힘줄
이 너덜거렸을 터
한 번도 아랫도리로 서본 적 없는 꽃들이
죽은 측백나무에 덩그랗게 머리가 얹혀 웃고 있다
머나먼 남쪽 어느 유곽에서도
어젯밤 그 집의 반신불수 딸이 머리를 얹었다고 한다
그 집의 주인여자는 측백나무처럼 일없이 늙어가던 사
내 등에
패물이며 논마지기며 울긋불긋한 딸의 옷가지들을 바
리바리 짊어 보냈다고 한다
어디 가서도 잘 살아야 한다
우둘투둘한 늑골이 어느새 고사목이 되어도
해마다 여름이면 빨갛게 볼우물을 패는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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