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문성해 취업일기

생게사부르 2017. 5. 16. 00:52

문성해


취업일기


한전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주부검침원 자리를 부탁하려
고 이력서를 들고간다 그래도 바짝하면 월 백이십에 공
휴일은 쉬니 그만한 일자리도 없다 싶어 용기를 낸 길, 벌
써 봄이라고 이 땅에 뿌리를 박는 민들레 제비꽃 들, 그 조
그맣고 기대에 찬 얼굴에 대고 조만간 잔디에 밀려나갈 것
이라고 나는 말해 줄수 없다 그에 비하면 밀려날 걱정 없이
남의 뒤란에 걸린 계량기나 들여다보면서 늙는 것도 괜찮
다 싶다가도 그래도 뭔가 좀 억울하고 섭섭해지는 기분에
설운 방게처럼 옆 걸음질치는데 명동성당 앞에는 엊그제
돌아가신 추기경님 추모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대
통령 앞에서도 할 말 다했다는 추기경님도 이땅에서는 임
시직이셨나, 그나저나 취업이 되더라도 일이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동안은 앳된 얼굴의 저 민들레처럼 저 제비꽃
처럼 내일 따윈 안중에도 없이 팔락거려도 될까

 

 

*       *       *

 

 

시적화자가 한전 주부검침원자리 이력서를 넣네요. 바짝하면 월 120에 공휴일 쉬니 그만한 자리도 없다 싶지만

취업이 되더라도 일 이년은 기다려야 한답니다.

남의 뒤란에 계량기나 들여다 보는 일 괜찮다 싶으면서도 뭔가 억울하고 섭섭한...

 

문 시인은 아마도 초등교사셨던 아버지께서 중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글을 쓰거나 만화가가 되고 싶지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던 교사는 되고 싶지 않았고요.

 

한전 계량기 검침원을 무시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하긴 시 청소 공무원 9급 시험에 박사출신이 이력서를 내는 곳이 대한민국이니까 가히 놀랍지도 않습니다.

 

문성해 시인은 부부가 모두 시인입니다(남편 유종인 시인)

불안정한 수입원이기에 아이 둘 키우면서 알뜰 살뜰한 주부의 모습이 그의 시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24살 졸업하자마자 35년을 정규직교사로 있으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월 생활비 걱정은 해보지 않고 살아

온 저로서는 실감할 수 없는 주부의 내핍 생활이 존경스럽습니다.

 

전문직 직업 여성이 아닌 주부, 특히 남편 혼자 버는 외벌이 가정으로 살림과 육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계약직으로 일하는 주부 대다수가 공감 할 내용의 시를 쓰는 시인,

또 같은 비정규직 입장이라도 남자들은 알 수 없는, 여성만이 알수 있는 얘기들이 싯감의 주를 이룹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번 정기적으로 시 가르치러 나간다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다 마쳤는지 모르겠지만...주부 10단 역량에 안정적인 수입과 명예를 누리는 중년기되시길 바랍니다.   

 

 

오만가지에 다 눈이 가서 사진을 찍어 놓는 것도 병 아닌 병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