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재삼 恨한, 무제無題

생게사부르 2017. 5. 7. 01:20

박재삼


한限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는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라나 그사람이
그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全生의 내 全설움이요 全소망인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      *      *

 

 

이  시기 자주 접할 수 있는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정서로 '한恨'이 있습니다.

'恨'은 풀지 못하고 무언가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마음상태를 말합니다

 

박재삼 시인 역시 이 恨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시인인데 이 시에서는 특히 '사랑'으로 인해

생긴 恨인 듯 합니다.

애달픔만큼 좀은 청승스러운 정서지만 꼭히 부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감정으로 인한 恨이라서 그럴까요

유치환 시에서처럼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여서일까요

 

상대방이 전혀 알지 못하는 짝사랑,

평생을 가슴에만 묻어 둔 사랑,

 

이승에서는 결코 이루어 볼 수 없는,

저승에서도 감나무쯤 되어, 그것도 사랑하는 이의 앞에서 눈에 뜨이는 게 아니라

 

'등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감나무 열매를 마음에 들어할 지

'전생의 내 전설움이요 전소망인 것을 알아낼는지' 아닌지도 궁금하지만

그 보다 더 관심이 가는 일은 '그 사람도 이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든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동병상련'

그런 설움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이 사랑을 알 수 없을테니까요.

 

 

 

무제(無題)

 

 

드디어 머무는 것이라곤 없고

모두 다 떠나는 것만이라네

물결도 배도

그 위에 탄 사람도

먼나라로 갔네

세상은 한정없이

멸망(滅亡)만이 이어져

그것이 총화(總和가 되어

불멸의 塔을 세웠네

가장 약한 것이

무수하게 모여서는

가장 강한 것이 되는

그 未知數(미지수)를 삼삼하게 느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