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빨간 날의 학교
구름은 구겨진 종소리처럼 흩어져 있다 쓰다가, 북북 찢어버린 편지처럼
종소리에 소인을 찍어 멀리 보내고 싶었으나 태양은 구름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지붕 아래는 텅비었다, 그것은 빈 상자이거나 기껏 교회의 장식장 같은 것
가끔 동생들이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자주 사도신경의 마지막 구절을 틀렸다
그때마다 잘못 떨어진 태양이 나무와 꽃 위에 걸려 있었다 차라리 울어버려
이파리에 파랗게 질린 잎맥처럼
한결같이 서 있는 나무의 체육시간 혹은 화단마다 묽게 달린 꽃들의 명찰에 대하여,
손바닥에 빼곡히 답을 적어 놓았지만
이파리는 늘 잎맥 속에 갇혀 있었다
죄를 사하여 주신 것과 몸이 다시 사신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은,
죄를 앞질러 형벌을 사는 것
태어 나는 순간, 곡을 하는 아이들처럼
없어도 좋을 기적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믿으면, 쑥쑥 자라는 십자가들
다시 편지를 쓴다, 텅빈 상자 속
이제 어둠을 흔들어 보일 때가 왔다
개봉되지 않을 울음을 가늠해 볼 때
저녁은 종탑에 올라 한장한장 구름을 찢어 불사른다
종소리가, 검은재가 되어 떨어진다
현대시 2010. 10
1974. 경남 거창
2000. 작가세계 등단
시집 <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 째 어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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