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성복- 정든 유곽에서

생게사부르 2017. 5. 2. 00:33

이성복


정든 유곽에서


1.
누이가 듣는 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蘭草 돋아 나는데, 그 남자는 누구일까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牧丹이 시드는 밤 가운데 地下의 잠, 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伐木(벌목) 당한 여자의 반복되는 臨終(임종),

病을 돌보던 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의 신체를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日本인가, 日蝕(일식)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와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裸身(나신)에 못 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昇天(승천)하면 나는 죽음으로 越境(월경)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쉬는 소리를 들을수 있다 혈관 마디마디 더욱 붉어지는 呻吟(신음)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

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 할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戰爭(전)쟁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革命(혁명)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行進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祖國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後世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口味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韓族의 별

 

 

 -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80)

 

 

*        *        *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겠지만 차라리 고대국가 시절 전쟁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실력이 비슷한 장수가 칼이나 창으로 합을 겨루고, 쉽게 결판이 나지 않고 해가 지면 자고 일어나서

뒷날 다시 싸우기도하는 인간미가 있어서?

 

컴퓨터에서 가로세로 위치 좌표를 설정하고 클릭을 하면 가공할 만한 핵무기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그것을 공중에서 잡아서 폭파 시키고, 전자기기를 일시에 무력화 시켜 먹통으로 만드는 무기가 개발되고

세균을 이용 해 전염병을 퍼트릴 수도 있고....

 

오늘 날 각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를 봐도 도대체 적이 누구고 아군은 누구며 내가 표적 대상이

되고 있는지 표적이 되었다면 왜 되었는지

 

'너 죽이겠다고' 경고라도 한 번 받을수 있을 것인

무엇보다 내가 전쟁에 노출되었고 죽음을 맞는 순간이란 걸 알고나 죽을 수 있는 건지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 같은 민족끼리 신경전을 벌이며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나라

 

임진왜란이 일어 나기 직전, 동인서인이 나뉘어 당파 싸움을 벌일 때 일본의 상황을 알기 위해 동인의 김성일과

서인의 황윤길이 파견되었다 와서 일본의 침략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황윤길의 예상이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당시 집권하고 있는 동인의 의견이 채택되었다는 역사에...

'에이! 설마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일에까지 파당싸움이 우선했을까' 하고 왜곡된 식민사관을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충분히 그럴수도 있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왜냐하면 400여년이 지난 현재의 민주국가에서도 그런데 왕조시대였던 그 때야 더 말해 무엇하랴

우스운 것은 지금이 결코 그 시대에 비해 크게 나을 것도 없다는 점이다

더 비겁하고 더 교활하고 더 비도덕적일수도 있다는...

 

한번 치뤘던 한국전쟁도 사실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동족간 살륙이었음에 도로 물리고 싶은데...

대내외적 상황이야 원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부추긴다 치더라도

당사자국인 남북이라도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바짝 정신차려야 하는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기에도 하수 중의 하수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 트럼프라는 대통령까지 더하여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싸고

대한민국은 이래저래 우울증에 걸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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