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승희 물가에서 우리는

생게사부르 2017. 4. 6. 15:58

이승희


물가에서 우리는


발을 씻는다
버드나무처럼 길게 발가락을 내어 놓는다
세상의 모든 염려를 품고
울음을 참고 있는 나무들이 있어
오늘 당신과 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앞이 캄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 발이 물 속에서 한없이 겸손해진다
눈이 없는 물고기처럼 당신의 손가락을 스친다

이제 더는 애쓰면서 살지말아요
어떻게든 사는건
하지 말아요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없었으므로
이제 나는 눈 없는 물고기로 살거나 죽거나
당신옆에 눕고 싶은 것일 뿐
상처 가득한 지느러미가 환해질 때까지
달빛이나 축내면서

어떤 당부도 희미해진 지금
말간 물이 발목에서 뒤척이는 건
마치 어떤 전생 같아서
몽유의 날들을 세어본다
세어보는 손가락이 붉어져서
물가의 나무들은 속으로만 발가락을 키운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용목 소사 가는 길 잠시  (0) 2017.04.08
이기철 너의 식목  (0) 2017.04.08
신미나 낮잠  (0) 2017.04.05
안도현 순서  (0) 2017.04.04
김창근 흑백시대  (0) 2017.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