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기택 신선횟집

생게사부르 2017. 4. 2. 14:34

김기택

 

신선횟집


사흘 전에 죽어 있던 큰 민어가
아직도 수조 안에서 뒤집어진 채
떠다니고 있습니다.

죽도록 팔리지 않은 민어도 끈질기지만
죽도록 사먹지 않은 손님들도
그 못지않게 끈질깁니다.
끝까지 사먹지 않는다면
맵고 짠 국물에다가
푹 끓여 내놓을 생각으로
그대로 놔두는 횟집 주인은
며칠 더 끈질길 예정입니다.
이래도 안 사먹을지 어디 두고 보자고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민어는 눈깔을 허옇게 뒤집고
주둥이를 컴컴하게 벌리고 있습니다.

안 팔리는 민어
안 오는 손님
하품하는 주인 앞에서
짓이겨진 파리가 말라붙은 파리채는
별일 없다는 듯
식탁 위에 한가하게 놓여 있습니다.

 

 

*     *     *

 

 

어제 오전은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초등동창 모친상 문상을 다녀왔고,

오후에는 사보이호텔에서 개최된 ' 여고 총 동창회'에 처음으로 참석을 해 보았습니다.

오전에는 동창이 지상에서 어머니와 이별을 해야하는 마지막 절차를 치르는 슬픈장소였고,

오후에는 축제공간이었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무채색 감정을 지니고 조문을 갔다가

조금 밝은 옷을 입고 설레는 맘으로 여고동문들 모임에 가서 동기들을 만났고

모처럼 얼굴을 보는 선 후배 지인들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나이쯤 되면

사람이 산다는 게, 그런거 같습니다.

카멜레온처럼 장소와 상황에 따라 적절한 옷을 갈아 입듯이 감정의 옷을 갈아 입는 것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는 나이,

 

진해 군항제가 시작되는 어제 간간히 비가 뿌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기도 하더니 오후에는 그쳤습니다.

어제 손님이 와서 군항제 갔다가 낮에는 회를 먹고 저녁에는 육고기를 먹었는데, 속이 안 받았는지

배탈이 나서, 식겁 먹었다는 얘기를 오늘 아침 우연히 누군가로 부터 들었습니다.

음식이 문제인지, 우리 문화에서 음식과 곁들이는 술이 문제인지, 본인 컨디션이 그러했는지

자세한 건 알 수가 없습니다만... 비 오는 날 회를 피하는 관습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시는 김기택씨 ' 신선 횟집'입니다.

 

 

민어 아닌 그 어떤 고기라도 수족관에 갇혀 며칠을 지내다 보면

허여멀거니 신선도라고는 떨어지기 마련 일 겁니다. 

 

그 고기가 싱싱하지 않아 찜찜해서 못 먹기도 하겠지만

음식에 특별한 안목이 없어 미각이 고급스럽지 못한데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대책 없는 감상주의자인 저는

제 놀던 바다에서 맘껏 헤엄쳐 다닐 자유를 잃은 것에 더 맘이 쓰이기도 합니다.


 

' 안 팔리는 민어
  안 오는 손님
  하품하는 주인 앞에서
  짓이겨진 파리가 말라붙은 파리채는
  별일 없다는 듯
  식탁 위에 한가하게 놓여 있습니다.'

 

 

맵고 짠 국물로 푹 삶으면 된다고 이미 대책까지 세운 주인은 하품을 하고

짓 이겨진 파리가 말라붙은 파리 채는 별일 없습니다.

한가하게 식탁에 놓여 있을 뿐...

 

수족관 민어가 좀 안 팔려서 횟감이 매운탕이 된들, 뭐 별일 입니까?

그것 보다 더 큰일들이 무수히 일어나는 세상에서...

 

 

이제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별일 없이 돌아갈 테고,

또 별일이 쬐끔 있은들 뭐 대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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