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정윤천 등, 김병호 저녁의 계보

생게사부르 2017. 3. 5. 21:56

정윤천





너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등이 먼저 신호를 보내오고는 했다
미워져서
얄미워져서
한번은 너를 끙, 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불러보려고
마음 먹기도 해 보았지만
언제나 대나무처럼 짱짱하던 이름을 지녔던
등이여

마침내 돌아서 가는 너의 뒤에서
정면이 되어 바라보이던
단호한 표정의 맨 얼굴이여



2011. 문학동네 <십년만의 사랑>

 

 

김병호

 

 

저녁의 계보

 

 

 

바꿔 내온 잔에도 금이 있었지만

뒤돌아 서는 여주인의 맨발을 보고는

말을 삼켰다

 

 

창마다 고인 저녁 밖에

계집아이 하나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제 몸에 그믐을 새긴 잔이나

뒤늦게 이혼을 이야기 하는 아버지나

무릎 오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저 아이

 

 

누구에게나 하나의 이름은

지우지 못한 금이다

 

금이 간 저녁이

당신을 지나간다

 

 

 

2012. 문학수첩, <밤새 이상李霜을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