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555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외 네편

안도현 1. 겨울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울가에서 송사리떼에게 거슬러 오르는 일을 가르치려고 시냇물은 스스로 저의 폭을 좁히고 자갈을 깔아 여울을 만들었네 송사리 송사리들 귀를 밝게 하려고 여울목에 세찬 물소리도 걸어놓았네 시냇물의 힘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송사리는 송사리는 거슬러 오르고 그때 시냇물이 감추어 둔 손가락지 하나가 물 속에서 반..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외 2편

나희덕 편 사라진 손바닥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 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년 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꽂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풍장의 습관 방에 마른 열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책상위의 석류와 탱자는 돌보다 딱딱해졌다.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