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이듬 스침

생게사부르 2017. 2. 27. 00:56

김이듬


스침


가스불에 김을 구우며
오늘 나를 스쳐 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버스 옆 자리에서 내릴 때까지 통화하던
외판원
나는 그의 직업과 실적까지 알아버렸다

드라이어로 음모를 말리던 목욕탕 여자

내 소포를 밀쳐놓고 잡담하던 우체국
직원
그는 내가 테이블에 낙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복도 바닥에 붙은 껌을 떼던 청소부
나는 그 앞을 지나갔다

오늘 나는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몹시
바빴고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

가스 불에 마른 김을 구우며
열장도 넘게 태워가며
내 심장의 불이 내 손등을 태우는 것을
본다

불에 스치는 마른 김처럼
나는 한 복판이 뚫려 부엌에 풀썩 주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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