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서정춘 빨랫줄, 달팽이 약전, 동행

생게사부르 2017. 2. 26. 17:20

서정춘


빨랫줄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 줄 같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방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당겨주는 힘
그 첫줄에 걸린 것은
바람이 옷 벗는 소리
한 줄 뿐이다


달팽이 약전


내 안의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 밖으로
빚어 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간신히 들쳐 입고 명부전이 올려다 보인
젖은 뜨락을 슬몃 슬몃 핥아가는 온 몸이
혓바닥 뿐인 생이 있었다


동행


물돌물 돌물돌
물이 흘러갑니다

함께가자
함께가자

어린물이 어르며
어린 돌을 데불고 흘러갑니다
모래 무덤 끝으로
그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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