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전동균 속의 불꽃, 빗방울의 집

생게사부르 2017. 2. 18. 01:45

전동균


속의 불꽃


한겨울 저녁의 문간을 넘어서
다 타지 않고 밑불 꺼진 연탄을
공터에 내다버렸다

쓸모없이 땅바닥에 부서지는
연탄의 몸, 순간
감추어진 속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다 타지 않고 밑불 꺼진 우리를
힘센 집게로 들어내 버리는 게 삶이라면
조각조각 부서지는 재 속에서
시뻘겋게 눈 뜨는 저 불꽃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는 동안

짧은 노루 꼬리 햇살 저문 공터에는
또, 이 세상 것이 아닌 어둠이
큰 아가리를 벌린 채 다가오고
오늘의 바람이 어제쪽으로 빠르게 불어 갔다


빗방울의 집


후두둑, 빗방울 떨어져
집을 짓는다

퇴근길 어두운 골목에
녹슨 양철 지붕에
근심 많은 굴뚝 연기 속에

떨어져, 금세 무너질
假宿의 집을 세운다

흘러야 할 것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 흘러간 뒤
웅덩이 같은 눈을 뜨면

이 세상 하찮은 것들의
상처 많은 꿈도
따뜻한 밥상으로 차려져 있는
그 집에 들어 가 세 살고 싶다
한 살림 차리고 싶다

늘 배고픈 아이의 울음 소리와
한계령처럼 깊은 노래 하나,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책 한권 마음에 감추어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