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속의 불꽃
한겨울 저녁의 문간을 넘어서
다 타지 않고 밑불 꺼진 연탄을
공터에 내다버렸다
쓸모없이 땅바닥에 부서지는
연탄의 몸, 순간
감추어진 속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다 타지 않고 밑불 꺼진 우리를
힘센 집게로 들어내 버리는 게 삶이라면
조각조각 부서지는 재 속에서
시뻘겋게 눈 뜨는 저 불꽃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는 동안
짧은 노루 꼬리 햇살 저문 공터에는
또, 이 세상 것이 아닌 어둠이
큰 아가리를 벌린 채 다가오고
오늘의 바람이 어제쪽으로 빠르게 불어 갔다
빗방울의 집
후두둑, 빗방울 떨어져
집을 짓는다
퇴근길 어두운 골목에
녹슨 양철 지붕에
근심 많은 굴뚝 연기 속에
떨어져, 금세 무너질
假宿의 집을 세운다
흘러야 할 것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 흘러간 뒤
웅덩이 같은 눈을 뜨면
이 세상 하찮은 것들의
상처 많은 꿈도
따뜻한 밥상으로 차려져 있는
그 집에 들어 가 세 살고 싶다
한 살림 차리고 싶다
늘 배고픈 아이의 울음 소리와
한계령처럼 깊은 노래 하나,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책 한권 마음에 감추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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