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문태준 가재미, 고영민 식물

생게사부르 2017. 1. 11. 09:05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

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

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

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

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

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식물 / 고영민

 

 

코에 호스를 꽂은 채 누워 있는 사내는 자신을 반쯤 화분에 묻어 
놓았다 자꾸 잔뿌리가 돋는다 노모는 안타까운 듯 사내의 몸을
굴린다 구근처럼 누워 있는 사내는 왜 식물을 선택 했을까 코에
연결된 긴 물관으로 음식물이 들어간다 이 봄이 지나면 저를 그
냥 깊이 묻어주세요 사내는 소리쳤으나 노모는 알아듣지 못한다
뉴스를 보니 어떤 씨앗이 700년만에 깨어 났다는구나 노모는 혼
자 중얼거리며 길어진 사내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준다 전기면도
기로 사내의 얼굴을 조심스레 흔들어본다 몇날 며칠 병실 안을 넘
겨다보던 목련이 진다, 멀리 천변의 벚꽂도 진다 올봄 사내의 몸
속으론 어떤 꽃이 와서 피었다 갔을까 병실 안으로 들어 온 봄볕
에 눈꺼풀이 무거워진 노모가 침상에 기댄채 700년 된 씨앗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다.

 

<포지션> 2015.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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