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천사에게
천국에 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른쪽과 왼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천국에도 있는 것이 이 세계에도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다가,
이 세계에도 있는 것이 천국에도 있으면 나쁜 것이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했다. 아,
달빛은 메아리 같아. 꼬리가 흐려지고......떨리는...... 빛과 메아리.
달빛은 비밀을 감싸기에 좋다고 생각하다가,
달빛은 비밀을 풀어헤치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달빛은 스스로 무릎을 꿇기에 좋은 빛,
달빛은 사랑하기에 좋은 빛, 달빛은 죽기에도 좋은 빛,
오늘밤은 천사의 날개가 젖기에도 좋은 빛으로 온 세상이 넘쳐서, 이 세계 바깥은
없는 것 같구나. 우리 도시의 지하에는 커브를 그리며 돌아다니는 열차가 있고, 열차에는
긴 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긴 의자에 앉으면 천국의 사람들처럼 죽은 듯이
흰자위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꿈속에서도 서로를 죽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의 눈송이 같은 귀에다 뜨듯한 입김을 불며 속삭여주었다.
인간을 사랑하느냐고 나는 물었고, 그리고 오랫동안 대답을 기다렸다.
- 시집 <에코의 초상> 수록
1970. 서울출생
1999.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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