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린
물컹했다
시청직원들이 가로수의 가지를 치는 동안
은행나무들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한숨처럼 길게 내뿜었다
문을 안으로 걸어잠근 노동조합
경영진은 씩씩거리며 허파 가득히 모래 언덕을 쌓고
헛기침만 쿨럭이고 있었다
삭발한 노조원들은 잉크를 엎지르며
사무실과 농성장을 산양처럼 뛰어다니고
나는 가슴에 양배추 같은 머리를 처박고
利子를 먹고 있었다
설익은 돼지비계가 물컹했다
산적한 문제위로
겨울이 물컹쿨컹 다가오고 있었다
파충류처럼 뒤엉켜서
연말과 함께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정류장이 어디냐
기성복을 입은 한 신사가 의자에 앉아
동아일보를 읽고 있다 경찰총장의 뇌물수수 사건 기사를
읽다가
황급히 말아쥐고 시청 앞에서 내린다
붉은 루즈를 짙게 바른 여자가
그 빈의자에 앉는다 핸드백으로 드러난 허벅지를 가리고
눈을 창밖으로 튼 채 꼼짝하지 않고 있다
광화문에서 내린다
허리가 꼬부라진 백발의 노인이 다가서자
붉은 루즈 다음에 앉았던 대학생이 공손히 일어난다
백발의 노인이 그 빈 의자에 앉는다
그는 계속해서 주위 사람에게 무엇인가 묻는다
다음 정류장이 어디냐, 지금 몇 시나 됐냐, 나이가 몇 살
이냐, 박정희 각하 이후에 나라가 망해간다, 다음 정류장에
어디냐, 지금 몇 시냐
버스가 한강철교를 건너
사육신 묘 정류장에 이르자 노인이 내린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튀어나온 뚱뚱한 아줌마가
그 빈 의자를 차지한다 미안해요 관절염이 심해서 미안해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주위를 향해
그녀는 연신 주억거린다 운 좋게 利子에 자리잡고 앉은
利子들이 묵묵히 장승처럼
창밖의 노량진을 내다보고 있다
1957.서울
1985.문예중앙 ,1990 <현대 시세계> 등단
시집: 누가 두꺼비집을 내려 놨나, 사자도망간다 사자잡아라, 토종닭 연구소
* * *
시를 쓸 수 없는 직업은 없습니다만(반칠환, 송재학 시인은 의사이든가요)
은행원이라는 직업이어선지....利子라는 단어가 많이 보입니다.
좀 오래된 시들이지만...참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는 생각
'기성복'을 입은 신사가 '동아일보'를 말아쥐고, 붉은 루즈 짙게 바른 여자...
노량진...
딸이 재수 할 때 가 본 적 있습니다.
공무원 고시원이나 학원가였고, 그 맞은 편 사육신 묘가 있더군요.
세종과의 신의를 지켜야 하느냐? 세조라는 현실적 힘을 인정해야 하느냐?
성삼문의 길을 택할 것이냐 신숙주의 삶을 살 것이냐?
1948년 '대한민국'이 들어서고 나서도 여전히 청산하지 못했던 '군주정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사이에 ' 시녀' 라는 말이나 ' 여전히 지가 공주인 줄 아나봐'라는 말에서
국정이 자신들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서로 이용 해 먹는 관계임을 역으로 추정 할수 있지 않을지...
경험에서 무엇인가를 배우지 못하면 한살 한살 나이는 먹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그 상태로 남겠지요.
애벌레인 채 결코 '나비'로 날아 오를 수 없다는 것...
2016년 병신년 다음의 정류장은 어디일까요?
'민주공화국'의 이름에 값 하는 대한민국의 도약을 기대합니다.
사진출처 : 2016. 한국관광공사 사진전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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