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령 미술관
그 멀리 까지 미술관을 일부러 보러 올라 간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을 찍게 된 배경에는 아들의 군대 얘기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군에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가겠다는데도 본인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휴학을 한 채로
대기대기 하다가...어릴 적 부터 남자 아이들 군에 가면 힘들다는 소리가 은연 중 의식속에 배겼는지,
규칙적인 생활보다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대로 사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가기 싫어 하던 군엘
' 에이~ 빨리 가버려야지'...하던 중 입대를 했고,
5주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 받은지 한달이 안 되어 무릎에 탈이 났습니다.
이전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무릎을 다쳐서 학교에서 바로 병원으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그 전에 그런 조짐이 있었는데 남학생 특유의, 아니면 아들이 그런 부분으로 곰탱여서 그랬던지
"왜 무릎이 아프지? 성장통인가" 하면서 아픈채로 걸어다니기를 또 며칠
그러니까 한 번에 찢어진 게 아니고 헤진 상태로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다니다가
그날 결정적으로 탈이 나 버린 것이지요. 무릎 부분에 이미 물이 차서 말랑거렸음에도
미련 한 아들, 예사로 그러려니 하고 넘긴 바쁜 직장 생활에 치인 엄마의 결정적 실수였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고 3이 되어 학년 초에 한창 마음 다잡고 있는 시기에
아들은 일주일 이상 병원신세를 지고 김 빠진 고 3생활을 시작했던 기억이 선행사건이었지요.
훈련을 받던 중에 어느 순간 뛰어 내렸는데 ' 아' 하는 느낌이 이미 왔었지만 조직이 조직인지라
자대 배치 후까지 기다렸고, 본대 갓 전입하여 분위기 파악도 안된 상태의 신병이 사정을 말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이전에 즉시 치료를 못하여 상황이 악화 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시간이 지날 수록 상태는 안 좋아 질테고,
군에서는 MRI 사진 찍는 것도 순서를 기다릴려면 두달 이상 걸린다고 하고...
마음이 빠짝바짝 타 들어 가다가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찾은 방법이 청원휴가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청원휴가는 본인의 휴가를 당겨쓰는거고 교통비도 없는지 부리나케 데리러 올라갔지요.
서울로 갈까 홍천에서 진료를 받나 고민하다가 어차피 수술을 해야한다면 집 가까운데가 나을 것 같아서
창원 한마음 병원에 지인을 통해 예약을 부탁을 했는데 군에서의 사유가 병원진료였으니
그날 바로 병원 진료가 되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지 바빴습니다.
밤새도록 올라가서 새벽에 도착, 차 안에서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
부대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둘러보게 된 미술관이었습니다.
문을 열 시간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외양만 찍을 수 있었던 사진이지요.
진부령 미술관은 아들의 첫 휴가와 관련된 서글픈 기억인 셈입니다.
아들은 결국 그 다음 달 휴가도 병원에서 보내다가 올라갔습니다.
수술을 받았고 제대로 아물지 못해서 목발을 짚고 귀대를 했습니다.
( 제대로 복무를 할수 있을까 싶어 알아보니 인대의 70% 이상이 잘려 나가야 복무면제가 된다고
하는데 또 상태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행이 행정병이었고 심한 훈련은 열외)
그 이후 한 신문의 논설에 실린 얘기를 읽고 쓴 웃음을 지은 일이 있습니다.
군 복무중인 아들이 아픈데가 있어서 밖에서 진료를 받고 다시 군에 들여 보냈다는
개인의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금수저 이전 '신의 자식'들로 통하던 재벌자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 자녀들이
여러가지 편법을 써서 군복무 면제를 받을때 서민들의 자식들은 신체에 고장이 나면
바깥에서 사비를 들여 치료를 해서 다시 군대 들여 보낸야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메이저 신문의 논설실장 정도 되는 사람이 그렇게 썼으니...나는 유구무언 ㅠㅠ
남의 소중한 자식들 데려 갔으면 제발 부모로부터 타고 난 신체 온전히 잘 유지하고 돌아와야 하고
군이란 특수 집단의 생활인만큼 신체 건강하고 다양한 동료들과 생활하면서
사회성, 문제해결력등을 길러 돌아오도록 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논설 실장은 자라 온 과정을 좀 아는 탓에 생면부지의 일반인이 쓴 것 보다는
관심있게 보면서 공감을 했습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그의 논설은 사회현상에 대해 필요한 곳을 딱딱 꼬집는 용어와 간략한 문장으로
영향력이 강한 편인 것 같습니다. 일단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자하기에...
한 개인이 완벽 할수는 없기에 기자는 기자정신에 충실하고 자신의 직업에 성실하면 됩니다.
하지만 메이저 신문의 기본베이스에 경제학 전공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만큼)
인문학적인 통찰(역사, 철학)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논란이나 반박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 이유를 대한민국에서 최상의 엘리트 코스로만 살아 와서 그럴까? 하고 생각한다면 너무단순 할지...
서울대 재학중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되었다가 박정희 정권 말기 민투위와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었던
한겨레 홍세화씨가 생각납니다. 본의 아니게 프랑스에 망명 정착하여 택시기사를 하면서
그 사회에서 이방인이면서 기층민으로 살아 봤기에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렵고 힘든 삶도
보듬을 줄 아는 지성인이 되지 않았을지...
인생을 멀리 봤을 때 오히려 폭 넓은 인간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 해보면
불행한 사건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건을 만납니다. 본인의 의지나 신념이 만들어 낸 사건도 있고
얼키고 설킨 사회와 연결되어서 만들어 지는 사건도 있지요.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이 만난 사건들을 자신 속에서 잘 녹여 죽을때까지 인간적인 성숙을 해 나가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 진부령 미술관 얘기 마무리하려 합니다. 아들에게 미술관 얘기 했더니, 그 곳에 자주 들렀고,
차를 기다릴 때에도 게서 기다렸고, 미술관 관리 하는 분과도 나름 친했다고 하네요.
강원도까지는 잘 갈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제대 할 때 쯤
'데리러 올라가서 주변지역 며칠이라도 여행을 하면 어떠냐?' 했더니, 아들이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네요.
병영 시설등 환경적인 여건은 불리 했지만 그래도 상사들이나 내무반 내 인간관계는 괜찮게 근무를 한 셈인데도
왜, 남자들 그런 얘기 있잖아요! 훈련 받은 곳이나 ' 군 생활 한 쪽 방향으로 '오줌도 안 눈다'든가
' 내가 아들을 낳아서 군엘 보내나 봐라!' 그런 애기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 자신이 그 곳에서 보낸 시절이 추억이 되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 될 때쯤
아들이 군 생활 한곳 주변 여행도 하고, 진부령 미술관 내부를 꼭 한번 둘러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적, 사적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벽, 탈 권위, 민주시민, 세계시민 되기 (0) | 2015.12.14 |
---|---|
나의 서재 (0) | 2015.12.13 |
천안상록 리조트 연수 (0) | 2015.12.07 |
먹는 즐거움, (0) | 2015.12.03 |
산문- 오해와 이해 (0) | 2013.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