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이해
수영은 물에서 하는 운동입니다.
수영이 스포츠로서 대중화되고, 일상이 된 요즘 시대에 참으로 우스운 얘기일 수 있지만
생활의 폭이 넓지 못하여 일반 상식이 부족했던 나는 젊은 시절, 수영에 대해 다소
편견이랄수 있는 오해를 하고 있었어요.
수영,
음전치 못하게 옷을 홀딱홀딱 벗어야 하는,
자신의 신체를 헤프게 노출해야 하는 운동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대다수 공부를 해서 진로를 대비해야 하는 시기, 머리 쓰기 싫어서
몸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 아이들이 흔히 하는 것이 운동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자신의 진로로 선택한 아이들은 또 그렇다치고 그 많은 운동종목이나
취미활동을 두고 꼭 수영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까지요.
그 편견의 시초가 어딘지 찾아 올라 가 봤습니다.
70년대 초반, 여중시절
여름 방학 끝나고 집이 좀 살만한 아이들,
휴가 다녀와서 찍어 온 사진을 돌리면 너도나도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 생활의 여유를 엄청 부러워하면서 말이지요.
가족들이 함께 여름휴가를 즐긴다는 사실에서 오는 위화감,
아직 덜 자란 몸이지만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 자체가 생소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해변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고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찍어 그 순간을 남긴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휴대폰으로 아무데서나 일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재생하고 시각화 해서 볼수 있는 요즘과 달리
사진기라는 기계 자체가 매우 사치품인 시절이었으니까요.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당시는 입시경쟁이 심한편이라 왠만하게 공부해서는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들이 지역마다 있었습니다.
경기중학교 교복 입은 아들을 데리고 지나가면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시기였고
같은 계통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나중에 나라의 인재가 되거나 최소한 지역의 지도급 인사가 되곤 했지요.
경기, 경복, 경북, 경남, 부산 등의 이름이 앞에 붙는 학교들이 그러했습니다.
학습만으로 진학을 못할 경우 무용이나 체육, 음악, 미술등 이른바 ' 특기생'으로 입학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온전히 학교라는 곳엘 다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던 시절...
무용, 피아노 미술학원을 다니던 친구들은 대다수 지역의 유지급 자녀들로 일반 학생들은 접하기 어려운 일상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똑 같은 교복을 입고 다녀도 그 아이들의 일상은 일반학생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 했지요.
간혹 성적이 우수하면서도 정말 자기가 하고 싶어서 예체능을 선택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예체능 특기로 입학한 학생들 중에는 영재나 수재급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자존감을 다치거나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뒤 처지는 성적의 대안으로 예술분야를 택하거나 학생본인, 혹은 학부모들이 학업이외 다른 분야에서
재능을 키우려는 보상심리로 예체능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하위 공무원 자녀로 빡빡한 일상을 살던 우리 자매들도 드물게 해수욕장을 갔던 기억은 있습니다.
그러나 성향상 해수욕을 하지는 않았고, 배를 타고 바다를 한 바퀴 돌거나
조가비, 우뭇가사리나 해파리 같은 것 등을 구경하거나 해변에서 발을 담그고 노는 정도였지 수영을 하지는 않아서
그 친구들이 그러고 놀았던 것에 대해 다소 편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첩을 뒤져보니 대학 시절, 비키니 입은 사진이 딱 한장 있었어요.
한 해 여름, 동해안을 세번 정도 올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번은 학교신문사에서 불영계곡을 거쳐 삼척 두타산 죽서루, 삼화사를 들렀다 왔고,
그 때 포항 어디쯤(망양?) 해수욕장에 들러서 수영복을 입고 놀았던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에도 여전히 수영복은 입을 일이 없었고, 바다를 구경하는 정도의 여름휴가 나기가 띄엄띄엄 지속되었지요.
우리의 아이들 세대는 엄마세대 보다는 생활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자아이들 대부분은 피아노를 치러 다녔고, 미술학원도 다녔으며
남자아이들은 태권도 학원을 필수코스처럼 다녔고요.
지들 엄마 세대가 학창시절 물감 한통 못 써 보고 학교를 졸업한 것과 비교해 미술도구나 화구가 흔해서
아이들은 그런 것에 구애 받지 않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수영도 흔히 하는 취미생활 중 하나가 되었고요.
직장 생활하는 엄마의 퇴근시간에 맞추어야 하는 딸 아이는 여러 학원을 전전했습니다.
초등 2학년 때 市에서 운영하는 실내수영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지정된 시간에 운행되는 버스가 있었지만
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9살 나이에 혼자 다니기에는 좀 먼 거리였고, 수영을 마치고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수영복이나 수경을
잘 챙겨 오기에도 아직 어린 나이여서 자주 데리러 가곤 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나는 여성들이 취미로 수영을 하고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를 해야하는 여고생들이
몸매 관리를 위해 많이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충분히 습득할 만큼 다니지는 못햇지만
두번 정도 등록을 해서 직접 수영을 해 보면서 이전의 편견은 깨져 나갔습니다.
살아가면서 아는만큼 이해의 폭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머리로 아는 것을 자신의 몸이 직접 경험한 것 이상 확실하게 깨닫는 지식은 없을 것입니다.
멀리서 혹은 곁에서 바라만 보다가 실제 자기의 일상이 되면 젖어들고 녹아드는 것이지요.
수영은 물에서 이루어지는 운동입니다.
수영을 하려면 수영복으로 갈아 입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에 속하고요.
게다가 물일을 하는 해녀들이 골 다공증이 없고, 일반인보다 관절이 늦은 나이까지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이들면서 자연스런 노화에 잘못된 생활습관까지 합쳐져서 어깨며 팔, 관절이 안 좋아 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수영만큼 온 몸을 골고루 사용하는 운동도 흔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특히 성장기 자녀들에게 '생존수영'을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에 이르면
수영 예찬론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마다의 진실'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 각각 다른 골목을 살아서 각각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방에 혼거(混居)하게 되면 대화는
흔히 심한 우김질로 나타납니다.... 자기의 경험적 진리를 곧 보편적 진리로 믿는 완강한 고집에서 나는
오히려 그 정수(精髓)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신의와 주체성의 일면을 발견합니다
섬사람에게 해는 바다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사람에게 해는 산 봉우리에서 떠서 산 봉우리로 지며,
서울사람에게 있어서 해는 빌딩에서 떠서 빌딩에서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 사람이 산골 사람을 서울 사람이 섬 사람을 설득 할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됩니다.
지구의 자전(自轉)을 아는 사람은 이 우김질을 어리석다 깔볼 수도 있으나
바다나 산이나 그런 구체적인 경험의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뜨는 해를 볼수 있는가? 물론 없습니다.
있다면 그곳은 머릿속일 뿐입니다.
'우주는 참여하는 우주'이며 순수한 의미의 관찰, 즉 대상으로 부터 완전히 독립된 가치중립적
관찰이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긴 하나 아직도 가치 중립이라는 '인텔리 안경'을
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 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추론적 지식과 직관적 예지가 사물의 진상(眞相)을 드러내는데 유용한 것이라면,
경험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 할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
다만 철학적 사유가 없는 경험은 가벼울 수 있습니다.
말끝마다 "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하던 정치 지도자가 생각납니다.
건설 토건은 자신의 전문분야라 그렇다치고...나머지 분야 모두에서 전문가는 아닐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영역이 아닌 공적인 지위,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서 '저마다의 진실' 은 위험천만입니다.
경험고집만이 주체적 실천의 믿음이 되어 일사불난하게 무리를 감행하며 밀어붙인 결과....
4대강, 자원외교... 거덜 난 국가재정 ㅠㅠ
그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합니다.
세간에 얘기하는 , ' 내로남불' 이 이에 해당 될 것입니다.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같은...
분명히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은 있습니다.
그래서 다수인 경우 의견을 조율하고 공동선을 위해 합의를 해야하는 것이지요.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한사람의 머리와 경험에서 나온 결정보다 좀 덜 똑똑하더라도
다수의 경험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결정은 최선 아니면 차선은 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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