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나비수건
고추 밭에 다녀오다가
매운 눈 닦으려고 냇가에 쪼그려
앉았는데
몸체 보시한 나비 날개, 그 하얀 꽃잎이
살랑살랑 떠 내려가더라
물 속에 그늘 한점 너울너울 춤추며
가더라
졸졸졸 상엿소리도 아름답더라
맵게 살아 봐야것다고 싸돌아 다니지
마라
그늘 한 점이 꽃잎이고 꽃잎 한 점이
날개려니
그럭저럭, 물 밖 햇살이나 우러르며
흘러가거라
땀에 전 머릿 수건 냇물에 띄우니 이만한
꽃그늘이 없지 싶더라
그늘 한 점 데리고 가는게 인생이지
싶더라
유홍준
하지무렵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정지문 앞에
서서 수건을 벗어 펑펑 자신을 때리며
먼지를 털었다
그 소리가 좋았다 나는 밭에서 돌아 온
어머니가 먼지를 털고 끓여주시는
국밥이 좋았다
점심때는 늘 뒷산 멧비둘기가 구구 구구
목을 놓아 울었다 마당 가득 감자꽃이
피고 지고 있었다 바닥이 서늘한
마룻바닥에 앉아 나는 아무말도 안
하고 그 서럽고 가난하고 뜨거운 국밥
을 퍼먹었다
검불 냄새가 나는 수건이었다
평생 자신을 때리며 먼지를 털던
수건이었다
구구 구구 목을 놓아 울던 수건이었다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은
수건이었다
어머니가 벗어 놓으면 꼼짝도 않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수건이었다
사진: 옛그늘 문화유산 밴드 심재근 샘
* * *
유홍준 샘 시 '하지'의 어머니 수건이 참으로 꿋꿋한 생활적인 수건이라면
이정록 시인 나비수건은 서정적인 수건이 되네요.
나는 어느쪽일까?
생활이 급급한데 냇가에 앉아서 저렇게 나비날개 보고 수건 띄우고 있을 듯
딱 '대책없는 낭만주의 녀자'
그래도 굶지 않고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신통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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