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권혁웅 삼겹살 구조론

생게사부르 2016. 12. 13. 00:04

권혁웅


삼겹살 구조론

 

네가 내 아래서 앗 뜨거, 뜨거라고 말할 때
말과 말 사이 침묵처럼, 말의 바탕인 침묵처럼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음악처럼
ㅅ 나 ㅊ라고 말할 때
네 등이 천천히 젖어들 때

살의 일*은 살에게, 지방의 일은 지방에게

내가 네 위에서 땀을 흘릴 때
그 땀이 운명의 손에 튀어 앗 뜨거, 뜨거라고 놀랄 때
내가 잘게 썬 김치나 콩나물처럼
축 늘어질 때
네 등이 점점 딱딱해질 때

살의 일은 살에게, 지방의 일은 지방에게

운명이 우리의 체위를 바꿀 때
집게와 가위를 들고 우리를 누비이불처럼 나눌 때
모든 말 뒤에 남은 침묵처럼
ㅎ나 ㅎㅎ라고 말할 때,
굳기름처럼 하얀 얼룩일 때

누군가 새롭게 내 등뒤로 다가오고
그때 우리는 완성된다


* 서정주, ' 선덕여왕의 말씀에서'

 

 

1967년  충북 충주시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흰바람벽이 있어  (0) 2016.12.15
박소란 소녀  (0) 2016.12.14
조향미 온돌방  (0) 2016.12.12
박승민 그루터기  (0) 2016.12.08
정선희 돌이된 새, 조용한 춤판  (0) 2016.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