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첫눈, 조선의

생게사부르 2015. 12. 11. 14:16

첫눈/조선의


통절한 믿음 하나 있다

기다리면 기어이 이룬다는, 내일에 거는 약속 같은 거

폴폴, 생각에 잠긴다

살면서 마구 흩어버린 것들과 겨루었던 것들

그대, 꿈속이듯 오랫동안

당신이 그 기쁨이었으면 바랬을 때

먹으로 글씨를 써도 첫눈은 하얗고

근심으로 삶을 받들어도 흰 눈의 평화처럼, 귀한 이름이여

눈 오는 날 외톨이로

섧지 않으랴

사랑도 미움도 외로움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이치이거늘

차가운 피를 혼자서는 껴안지 못하고

기도 위에 무릎 꿇으니

영원한 것만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삶이 그러하거니

하얀 눈 밟고 되돌아올 수 없거든

누구에게나 사랑을 보태게 하라

빙화(氷花)의 목숨 안에 결벽을 쌓을지라도, 그대여

아직 내가 못다 지은 죄로 병이 깊어지고

차례로 섬기듯 첫눈을 바라노니

참, 단순한 슬픔에

아프고 견디지 못하겠거든

이 소망 다 풀어, 하늘의 깊이만큼 눈시울을 적시라

믿음 하나 통절하게

먼 길에 첫눈이 내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