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조선의
통절한 믿음 하나 있다
기다리면 기어이 이룬다는, 내일에 거는 약속 같은 거
폴폴, 생각에 잠긴다
살면서 마구 흩어버린 것들과 겨루었던 것들
그대, 꿈속이듯 오랫동안
당신이 그 기쁨이었으면 바랬을 때
먹으로 글씨를 써도 첫눈은 하얗고
근심으로 삶을 받들어도 흰 눈의 평화처럼, 귀한 이름이여
눈 오는 날 외톨이로
섧지 않으랴
사랑도 미움도 외로움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이치이거늘
차가운 피를 혼자서는 껴안지 못하고
기도 위에 무릎 꿇으니
영원한 것만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삶이 그러하거니
하얀 눈 밟고 되돌아올 수 없거든
누구에게나 사랑을 보태게 하라
빙화(氷花)의 목숨 안에 결벽을 쌓을지라도, 그대여
아직 내가 못다 지은 죄로 병이 깊어지고
차례로 섬기듯 첫눈을 바라노니
참, 단순한 슬픔에
아프고 견디지 못하겠거든
이 소망 다 풀어, 하늘의 깊이만큼 눈시울을 적시라
믿음 하나 통절하게
먼 길에 첫눈이 내릴 때,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상병, 귀천, 그날은, 강물, 갈매기 (0) | 2015.12.13 |
---|---|
성춘복, 아무도 만나지 못한 바람 (0) | 2015.12.13 |
김광균-와사등, 외인촌 (0) | 2015.12.09 |
김광규-묘비명, 이생진-가난한 시인 (0) | 2015.12.09 |
주제: 가난- 천상병, 안도현, 신경림 (0) | 2015.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