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미
온돌방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에 가득
궂은 날엔 방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절 나팔꽃처럼 금새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 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 * *
심리학에 ' 미해결과제' 라는 말이 있다.
성장단계에서 그 시기 꼭 풀어야 할 욕구를 충분히 풀지 못한 경우, 그 욕구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한단계 나아갈 때 마다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 할수 있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우리 속담에' 늦게 배운 도적질 해 뜨는(지는) 줄 모른다? '는 말이 있다.
잡기라고는 해 보지 않은 사람이 늦게 알게되면서 재미를 붙여 패가망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노름이나 술, 담배, 바람피우기 등등 분야는 그 사람의 ' 미해결과제'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 날 것이다.
갓난 아이 시절, 엄마가 돌아가셔서 엄마애정을 충분히 받아보지 못 하고 성장한 사람
(이런경우 인력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문제이기에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고 아버지의 노력
할머니나 이모, 고모 등 엄마를 대신 할 수 있는 양육자가 있으면 그나마 좀 낫다)
아버지의 폭력이나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해 엄마가 집을 나가 엄마 애정에 굶주린 사람은
이후에 만나는 이성에게서 '엄마애정'을 갈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엄마의 애정은 엄마만 줄 수 있기에 그 이후 이성을 옮겨 다니며 찾아보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삶이 복잡하게 꼬여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건 아빠의 부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그리고 진심어린 애정을 받아 본 사람이 그 애정을 알기에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는데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자라난 경우 상대방에게 주기도 어렵게 된다.
그럴 경우, 이미 놓쳐 버려서 다시 회복하기가 불가능한 경우
그 '미해결 과제'를 이루는 방법 중 하나가
자신의 행동(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원인을 알고(통찰) 대치 할 수 있는 치유방법을 찾아 그 것을 엷게 만들어
극복 해 나가는 방법이 있다
어린 시절 잠시 시골에서 생활 해 봤을 뿐, 사실 시골의 저런 생활 크고나서는 해 보지 못했다.
게다가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도 고등학교 시절 돌아가셔서
이전 세대의 여성들 살림살이에 대해 난 잘 알지 못 한다.
하지만 일곱 살 이전 시골살이가 기억에 남아
쿰쿰한 메주 띄워 매달아 놓던 모습, 웃목 콩나물 시루에 천으로 덮어놓고 물 주던 모습
등등이 아련하게 기억에 남아 참으로 애틋한 정서를 불러 온다.
시인학교 수강생들 나이세대가 비슷하고 지방서 자란 탓인지 저런 시를 읽으면서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눈다.
그러나 자녀 세대만 넘어가면 ...우선 우리 아이들만 해도 저런 시를 이해 할 것 같지 않다.
시골 생활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만 지나면 저런 시를 쓸 사람도, 읽고 공감할 사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자녀들을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려면 성장과정 그 시기 시기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할 수 있는 것을 원도 한도 없이 다 하고 자라나면 좋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천진난만하게 장난도 치고 개구장이 짓도 하면서 아이답게 자라야하는데
그 부분에서도 미흡해서 아들은 '애 늙은이' 같이 자란감이 없지않다.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럼에도 인생은 늘 그런 것이다.
뒤 늦게라도 깨우치면 다행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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