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승민 그루터기

생게사부르 2016. 12. 8. 08:12

박승민


그루터기


벼를 베어낸 논 바닥이 누군가의 말년
같다
어느나라 차상위층의 안방 속 같다
겨울 내내 그루터기가 물고 있는 것은
살얼음 속의 푸르던 날

이 세상 가장 아픈 급소는 자식새끼가
제 약점을 고스란히 빼다 박을 때

그래서 봄이오면 농부는 자기 생을
이식한 흉터를 무자비하게 갈아엎고
논바닥에 푸른색 도배를 하는 것이다

등목을 하려고 수건으로 탁,탁 등을
치는 순간 깜쪽 같이 그의 등판에 업혀
있는 그루터기들

 

 

 

 


 

1964년 경북 영주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

 

 

아래 해설은 <된장 담그는 시인 이위발 블로그서> 가져 왔습니다.

 

 

이 체제下에서는 모두가 난민이다.

진도 수심에 거꾸로 박힌 무덤들을 보면 영해領海조차 거대한 유골안치소 같다.

숲속에다가 슬픔을 말릴 1인용 건초창고라도 지어야 한다. (중략)

한 발씩만 걸어오라고, 그렇게 천천히 걸어오는 동안 싸움을 말리듯 자신을 말리라고

눈물을 말리라고 두 걸음 이상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말리다”와 “말리다” 사이에서 혼자 울어도 외롭지 않을 방을 한 평쯤 넓혀야 한다.

神은 질문만 허락하시고 끝내 답은 주지 않으신다.

대신에 풍경 하나만을 길 위에 펼쳐놓을 뿐이다.
_「슬픔을 말리다」 부분

박승민은 이제 스스로 슬픔을 말리려 하고 있으며 누군가의 슬픔도 말리고자 한다.

나와 너의 젖은 슬픔도 ‘말리고’ 동시에 그 슬픔에 빠져드는 누군가도 ‘막아서려’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를 이와 같은 능동적인 인간으로 바꾸었을까.

그 심저에 “진도 수심에 거꾸로 박힌 무덤들”로 표상되는 세월호가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저 숨 막히는 떼죽음들을 접하며 그는 “영해領海조차 거대한 유골안치소 같”다고 자각한다.

그리고 이 자각은 다시 “이 체제下에서는 모두가 난민이다”라는 인식의 변곡점을 이끌어낸다.

 

이 난민 의식을 공유하는 순간, 이제부터 그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다.
그래서 박승민의 시 곳곳에는 삶의 연대가 생생하게 흘러나온다.

 

사람이 “쉰을 넘는다는 건/허공으로 난 사다리를 오르는 일”이자

“진짜 우는 배우처럼 그 역(役)을 사는 것”인데도, 혼자가 아니라서

 “감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조롱박의 손/힘줄이 파랗”다거나(「감나무사다리」)
“숨이 오르막에 닿을 듯/명아주 지팡이가 근들근들/해뜨기 전에 언덕을 올라와서/

돌밭에 쪼그려 한나절을 나던” 파란 함석집 할머니가 덜컥,

 “맥을 놓으”면 밭도 “시름에 빠”지며 “흙들”도 덩달아 “버석버석 낯가림을” 하는 교감에 눈길을 준다.

 

이와 같은 상생의 연대기라면 체제가 간섭할 틈이 거의 없다.
여기에 시인은 “입 안 가득 새까만 알들 물고” “훨훨 눈 속에서 석 달 열흘을 얼었다 풀렸다 하면서

어린 새끼들 하나 둘 눈 틔”운 다음,

“방울방울 부레를 달아주고 비늘과 수초와 물비린내까지도 꼭 물고 놓지 않는”「맨드라미의 포란(抱卵)」

어미의 포란을 더한다. 첫 시집에서 ‘지붕의 등뼈’인 모성을 발견한 그가

맨드라미에서 포란을 발견하고 포월적 상생의 미래를 열어두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말리려고 해도 그의 슬픔이 어찌 다 마르랴.

시인에겐 천형과도 같은 슬픔이 뼛속에까지 저미고 있다.

이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근원적인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시집(詩集)을 강물로 돌려보낸다.

봉화군 명호면, 너와 자주 가던 가게에서 산
과자 몇 봉지 콜라 한 캔이 오늘의 제수용품(祭需用品)

오랜 바람에 시달린 노끈처럼
이 세월과 저 세월을,
간신히 잡고 있는 너의 손을,
이젠 놓아도 주고 싶지만

나는 살아 있어서
가끔은 죽어 있기도 해서

아주 추운 날은 죽은 자를 불러내기 좋은 날

“잘 지냈니?”
“넌 여전히 아홉 살이네!”

과묵했던 나의 버릇은 10년 전이나 마찬가지여서
다만 시를 찢은 종이에 과자를 싸서
강물 위로 90페이지 째 흘려만 보내고 있다.
담배 향香이 빠르게 청량산 구름그늘 쪽으로 사라진다.

아무리 시가 허풍인 시대지만
그래도 1할쯤은 아빠의 맨살이 담겨 있지 않겠니?

(중략)

그래서 작년처럼 너의 물 운동장을 구경만 한다.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빠져나가는 뜨거운 살들이 얼음 밑으로 하굣길의 아이들처럼 발랄하게 흘러만 간다.
_「12월의 의식(儀式)」 부분

그의 슬픔이 여기에 이르러 말갛다.

차갑고 참담한 슬픔이 아니라, “하굣길의 아이들처럼 발랄”함 같은 게 스며 있다.

아마도 “아빠의 맨살이 담겨 있”을 시집을 찢어 보내는 제의(祭儀)를 통해 시인은 죽음을 삶으로 끌어들이지만,

죽음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억의 재편을 도우며 슬픔의 무게를 벗겨낸다.

시인의 명호강이 그러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단순히 아이의 유골을 뿌린 데가 아니다.

아이와 함께 새로운 기억들이 생성되는 곳이자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공존의 지대이다.

그러니 그의 슬픔도 말개질 수밖에. 그의 슬픔은 이제 그가 포월한 상생의 에너지로 가라앉아 갈 것이다.

슬픔이되 슬픔만이 아닌, 심저를 정화하는 시의 마음인 애이불비(哀而不悲), 애이불비로.

 

밭둑에서 고개 들어 산과 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 우선 띈다.

그는 꽃과 나무와 풀, 물결과 바람의 흔적까지 깊이 더듬는다. 자연은 곁에 있다.

그것은 담장과 골목을 넘나들며 인간의 소유를 교란하고, 애초에 제 땅이 없으므로 모든 걸 차지한다.

그것은 무위이면서, 위무의 장소이기도 하다.

체제의 난민으로서 그는 숲속에 “나무 예배당” 같은 걸 지어 슬픔이라는 심장 출혈을 말려보려 한다.

 

다음으로, 고개 돌려 이웃의 노년을 보듬는 젖은 눈길이 있다.

이곳의 노인들은 밭이 아프니까 병세가 더 나빠지고, 수몰된 고향을 꿈인 듯 떠올리고,

산 식구와 죽은 식구가 걸음마다 비쳐오는 “흙바닥 거울”에 쪼그려 쉼 없이 절하는 중이다.

 늙은 자연 늙은 농촌 늙은 인간의 곁에 그는 처연히 서 있다.

경계와 구획을 불허하는 자연의 “푸른 셈법”은 인간사 곳곳을 겨누기도 쓰다듬기도 한다.

약한 것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무너지는 세상에서 늙고 병들고 버림받은 목숨, 혈육을 비명에 보낸 인생에 도농 구분이 있으랴

내 가슴을 유독 찔러오는 것은, 놓을 수 없는 것을 놓아버렸거나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려는 듯한 인간의 상태랄까,

시집의 낮은 톤을 배후에서 받쳐주는 더 깊은 목소리이다.

 

그것의 이름은 “허무”인 것 같다. 마음의 “잿더미”에 와 덮이는 “솜이불” 같은 허무는 여기서 처음 본다.

허무는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도, 어떻게든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허무하게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 이영광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