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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무섬 마을

생게사부르 2016. 10. 24. 12:34

영주 무섬 마을


 

 

 

 

무섬마을 유래

 

 

우리나라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를 만들어 낸 곳이 여럿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 선암마을, 청령포 등이 그에 해당하는

영주 무섬 마을 역시 마찬가지로 3면이 물로 둘러쌓인 '물돌이' 마을입니다.

 

'무섬(물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으로 

경북영주 문수면 수도리도 물돌이 마을 중 한 곳입니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 뒤편에서 만나

350°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무섬마을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반남 박씨(潘南 朴氏) 입향조(入鄕祖)인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예안)김씨(宣城金氏)인 김대(金臺)가

영조 때 처가 동네에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반남박씨와 선성(예안)김씨가 함께 세거(世居)해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 48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가옥 가운데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어서 특이한 마을로 매력을 발산하게 됩니다.

 

 

 

 

 

 

 

 

 

 

 

 

 

 

 

 

 

 

박수가 마을에 들어와 건립한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총 9개 가옥이

경북문화재자료 및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세기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납풍" 의 집 "해우당"이 경북 민속문화재 제92호고, 

경북 민속자료 118호로 지정된 "김성규" 가옥도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택입니다.

 

아도서숙(亞島書塾)으로도 불리던 시인 조치훈의 처가(妻家)는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폐숙(廢熟)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며

마을 내 고택과 정자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고풍스런 옛 향취를 풍기고,

30년 전까지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 외나무다리가 마을의 대표 상징물로서

역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납풍' 의집 해우당. 경북 민속자료 92호

 

마을 들어서면 입구에 있는 해우당입니다.

 

 

 

 

 

 

 

 

 

 

 

 

 

 

 

 

 

 

 

 

 

 

 

 

집집마다 입구가 훤하게 틔여 있어 보니 대문이 전혀 없었습니다.

있을 필요가 없었나 봅니다

 

 

 

'까치구멍집 '에 대한 설명입니다.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고, 대문이 닫혀 있어 지붕 윗쪽만 쳐다봤는데

까치가 드나드는 현장을 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더군요.

 

 

*까치 구멍집: 지붕마루 양단 구멍으로 집안에 까치가 드나들었다고 함.

 

 

외나무다리

 

 

이곳 "무섬마을" 에는 350년간 이 마을의 유일한 통로였던 "외나무다리" 가 있는데,

길이가 150m, 폭이 30cm 에 불과, 폭이 좁아 강을 건너기가 매우 불안하여 

장대에 의지한 채 건너기도 했습니다.

 

장마철이면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떠내려가기 일쑤여서, 그때마다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고 하며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장보러 가는 다리, 학동들 학교 가는 다리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하네요

 

1983년 지금의 "수도교-콘크리트 다리" 가 건설되고 나서는 사라졌는데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하나를

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매년 10월에는 "외나무다리 축제 행사" 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이 나갈 때는 상여(喪輿)를 타고 나간다'고 할 정도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마을이었다고 하니 이 곳의 '외나무 다리'는 뭍과 섬을 잇는 다리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 또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로 상징성이 있는 것 같니다.

 

한 여름에는 물이 많이 불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오늘은 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다리 아래로 쉼 없이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면 약간 어지럽기도 해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데

오늘 특히한 친구가 다리 중간에서 못 가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다시 돌아 올 수도 없이

한참을 지체하면서 달래가며 지나기도 했네요.

사람을 피 할수 있도록 갓길 같은 짧은 디딤대가 중간중간 있기는 합니다.

 

 

 

 

 

 

 

아직 물로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친구들은 기분 up 다. 

 

 

 

 

 

 

 

 

 

 

 

 

 

숙박, 교육, 놀이 시설을 갖춘 한옥 체험 수련관과 무섬마을 형성에 관한 역사와 배경과 생활과 문화 자연환경 등을

알아 볼 수 있는 무섬자료 전시관에서 시작하여 마을을 한바퀴 돌면 됩니다.

 

많은 집들이 있지만 무섬마을을 개척한 반남 박씨 중시조 박수의 집인 ‘만죽재’, 선성 김씨의 대표적인 고택인 해우당을

찾아 보면 되고, 특히 '까치구멍' 집인 박덕우, 김규진, 김정규, 김재진 가옥 등도 볼거리입니다.

 

까치구멍 집은 방과 마루 등이 집안에 있어 춥고 긴 겨울에 모든 생활이 한곳에서 이루어진 가옥으로

지붕마루 양단에 구멍이 있는데 이곳으로 까치들이 드나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마을 전체가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져 있고,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적으로도 비슷해 천혜의 자연조건을

자랑하는 무섬마을...

하회마을과 달리 일반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탓에 옛 선비고을의 맛을 흠씬 맛볼 수 있는 것이

이 마을의 자랑이었는데

 

요즘은 알음알음 혹은 다녀간 사람들의 블로그를 통해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 오고,

젊은이들은 하루 숙박하면서 옛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전통 마을의 여유로운 생활을 접하고

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 있던 할머니 집에서의 추억을 되 짚어보는,

옛날 전통 마을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무섬에 와서 보니...〉 -최대봉-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네

메마른 눈짓이었을 뿐이었노라 떠나보낸 시간들이

여기 켜켜이 모래로 쌓이고

물길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는것을

 

 

둘 데도 놓을 데도 없이 정처 없는 마음자리일 때

하도 외로운 발길이 하릴없이 물가로 향할 때

여기

그리움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네

 

 

백년의 별빛이 해우당 지붕에 와송으로 피어나고

천년의 달빛이 물 위에 안개다리를 짓는

그 아득한 적멸 속에서도

나는 너의 웃음에 눈 감고

너의 눈물을 가두었다네

 

 

그러나, 오늘, 나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네

저물녘이면 강물도 모래와 더운 숨결로 몸을 섞고

밤새도 더러는 물을 건너 숲으로 가 뒤척인다는 것을

 

 

떠날 때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다짐하지만

덧없이 흐르는 이 물가에 앉으면

그 눈빛 글썽이며 다시 돌아 와

너를 생각하네

오늘, 무섬 이 모래 둔덕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