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방사 [ 喜方寺 ] 단풍
대학시절 답사 다니던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처럼 길이 잘 닦여 있지도, 관광이 일상이던 생활도 아니어서
참으로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역사학과니 답사 여행을 많이 다닌 편입니다만...
사실 학과마다 그런 행사가 있었습니다. 국문학과는 사투리, 방언연구를 위해, 지리학과는 지질 탐사
음악이나 미술과는 연주회나 전시회 등 학과 특징에 따라 주제는 달랐지만요.
요즘은 그렇게 할수 없지만 영주 부석사 앞 당간지주에 올라가 그 사이에서 찍었던 사진이 기억나고,
그때가 마침 가을이었는데 제가 자라던 마을에서는 감나무나 대추외에 과일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부석사 주변 과수원에 사과가 주러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알마나 신기했던지...
결국 학과에서 사과를 박스 째 사서 나눠 먹었는데 얼마나 싱싱하던지 그 맛을 잊을수 없었습니다.
그 때 희방사도 갔는데, 가는 길이 멀었지만 아련하고 풍광이 좋았던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후로 부석사는 우리 아이들 기차 태워 주려고 영주 있는 친구에게 가면서 들리기도 했고,
학생들 수학여행 가면서 소수서원과 함께 보고 오는 코스이기도 했지요.
안동을 가게되면 하회마을과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을 들리는 코스로 보통 일정이 짜여졌습니다.
어떻든 오랫동안 가 볼 기회가 없었던 곳이어서, 병산서원이 취소되고 희방사가 잡혀도 괜찮았습니다.
희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643년(선덕여왕 12)에 두운(杜雲)이 창건하였으며, 호랑이에 얽힌 창건설화가 전해집니다.
" 두운은 태백산 심원암(深源庵)에서 이곳의 천연동굴로 옮겨 수도하던 중, 겨울밤에 호랑이가 찾아 들어 앞발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무엇인가를 호소하였다. 살펴보니 목에 여인의 비녀가 꽂혀 있었으므로 뽑아주었다.
그 뒤의 어느 날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어여쁜 처녀가 호랑이 옆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처녀를 정성껏 간호하고 원기를 회복시킨 다음 사연을 물으니,
그녀는 계림(鷄林)의 호장(戶長) 유석(留石)의 무남독녀로서, 그날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려고 하는데
별안간 불이 번쩍 하더니 몸이 공중에 떴고, 그 뒤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다.
두운은 굴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겨울을 넘긴 뒤 처녀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유호장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주었으며,
무쇠로 수철교(水鐵橋)를 놓아 도를 닦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였다. "
1850년(철종 1) 화재로 소실되어 강월(江月)이 중창하였으나 6·25 때 4동 20여 칸의 당우와 사찰에 보관되어오던
『월인석보』권1과 권2의 판본(版本)도 함께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존불(主尊佛)만은 무사하여 두운이 기거하던 천연동굴 속에 봉안하였다가
1953년에 주지 안대근(安大根)이 중건한 뒤 대웅전에 봉안하였다고 하네요.
시간이 다소 촉박하여 희방폭포까지만 갔다오기로 했지만 희방폭포와 희방사까지의 거리가 200M 밖에 떨어지지 않아서
걸음이 빠르고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의욕에 넘친 친구 열명정도는 속도를 내어 절까지 다녀왔습니다.
제 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서 탐사로를 따라 2 주차장 까지 갔는데 소형차는 2주차장까지도 운행 할수 있었습니다.
희방사 절 앞에 가니 임도가 있는지 절 앞에도 차가 두어대 서 있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희방 [喜方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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