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남극-입추, 랜드로바 구두

생게사부르 2016. 10. 4. 00:02

입 추

 

 

 

 

 


잣나무 가지에
매미가 벗어 놓은 몸
참 고단 했겠다
몸 속 진을 다 빼서 입었을 몸
참 잘도 빠져나갔다

나도 쏙
이 몸을 벗어 놓고
잣나무 가운데 가지쯤에서 쏙
몸 벗어 놓고
잣나무 가지 끝에서 휙
뛰어 내렸으면


랜드로바 구두


랜드로바 구두 밑창이 갈라져 빗길을 걸으면 양말이 젖는다

그럴 때마다 그 구두를 신은 시간과 구두를 신고 걸은 길과 또 구두를 신고 함께 걸은 사랑하는 이의 상처가 생각나
갑자기 우울 해진다
우울이 구두다
그러니까 나는 우울을 신고는
우울하지 않은 척 다니다가 끝내 내게 들킨거다

구두 밑창을 갈러 가게에 들렀더니 새 구두를 사는 게 낫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또 우울을 숨기고 살수 밖에
광택으로 우울을 가리고 살다가 또 양말이 젖고서야
그렇지,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구석진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남극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승유 책상  (0) 2016.10.07
이상국-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0) 2016.10.05
구재기 상사화  (0) 2016.10.03
박연준-우산, 임승유-우산  (0) 2016.10.02
미안하구나 내 추억아-윤석산  (0) 201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