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남극-놀러와, 잎이지는 날 첫사랑은

생게사부르 2016. 9. 24. 07:56

김남극


놀러와, 잎이 지는 날

 

놀러와, 꽃잎 지는 날
슬쩍 손금 내밀고
여린 선들이 만들어 낸 물결 같은
당신의 그 복잡한 시절들을
내 손금에 연결해
그리고는 지워
저 적멸보궁쯤 가서 버리든가
상왕봉 지나 북대 절 뒷마당에
쏟아버려
그리고 다시 손 내밀어
잡아줄게
손금 없는 손으로
산 아래까지 몸을 굴려
둥글어 질 때까지
작아질 때까지
놀러와
잎이 지는 날
문득 잎이 지듯이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묶었고
연초록 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을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 보다가

한 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 숲
새끼 손가락 만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 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1969. 강원도 평창 봉평
2003. <유심> 신인문학상 등단
시집: '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 '너무 멀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