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존재/김행숙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비로소 나는 꿈을
깰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생각했다 만질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것 같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 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이별의 능력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있는데
내장이 연통이 되는데
피가 끓고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든 안개를 거느리고 이민을 떠나는데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
새들이 큰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물고 갔어.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알게돼.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건 구름. 당신의 지팡이.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 간 냄새
가 사라지는데
나는 옷을 벗지. 저 멀리 흩어지는 옷에 대해
이웃들에 대해
손을 흔들지.
- <이별의 능력> 문학과 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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