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이웃지역 진해

자산 솔밭 추억

생게사부르 2015. 12. 5. 18:53

자산 솔밭에 얽힌 추억

 

 

 

2012년 진로교사로 전과를 한 이후
함양에서 일년 근무를 하고 다시 마산으로 전입을 하게 되었다.

 

공기 맑은 시골에서 자연을 접하고 생활한 덕분인지
새삼스럽게 식물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시인은 아니었지만 식물들에게 부끄러웠다.
안도현 씨의 시에서처럼 "애기똥풀" 만 모르는 게 아니었다.

제모습 제 이름으로 해마다 피고 졌을텐데...

 

동식물이나 사물 대신 변화무쌍한 인간의 심리에 대해 공부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간에 대해서도 더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솔직한 얘기일 것이다.

순전히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이유로 한 학교를 선택했다.
창원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쇠락하는 도시지만
도심 한 가운데 솔밭을 거쳐 직장에 출퇴근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숲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달리하면서
충실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솔밭 공원과의 첫 인연은 다소 난감하지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부근에 위치한 여학교를 다녔지만 버스를 타고 지나가 보기만 했지 한 번도 내려 본 적은 없었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관리가 잘되고 있는 도심 휴식처로 다듬어진 솔밭은 아니었다.

 

결혼을 했고 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무렵,
농협에서 주최하는 그림대회가 솔밭에서 열렸다.
토요일 휴일이어서 할머니 댁에 떨어져 살고 있는 다섯 살 나이 차 나는 제 동생을 데리고 함께 왔었다.
평소 엄마와 떨어져 있는데다 누나와 같이 소풍 온 기분이 들었던지
아들은 온 솔밭을 넘어 질듯 위태위태하게 휘젓고 다녀서 따라 다니기에 바빴다.
딸에게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내 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우리 농산물 애용’에 대한 소재를 받고 막 그림 시작하는 걸 보고 제 동생 좀 따라다니다 왔더니

뭐든 쉽게 후딱 후딱 해 치우는 딸은 그 사이 그림을 다 그렸다며 털고 일어서고 있었다.
그림 속에는 가을답게 감나무 밤나무에 울긋불긋하게 과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런데 풍성한 밤나무를 보는 순간,

 

‘밤이 왜이래 ! ’
‘몰라! 그냥 그렇게 그렸어!’

 
가시가 돋힌 둥근 밤송이가 아닌, 알을 까낸 낱개짜리 밤이 나무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얘가 밤송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나! ’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조금 이상한 쪽으로 극성이라면 극성인 것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책에서 보는 것들을 꼭 실물을 보여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밤나무를 봤을텐데...

 

시장에서 일부러 석류를 사서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껍질을 쪼개자 안에서 보석같이 투명한 알갱이가 나왔을 때

딸이 내 질렀던 탄성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또 감을 잘라먹을 때 마다 딸은 그 씨를 쪼개 잘라 달라고 요구를 했다.
감씨를 자르면 안에서 숟가락이 나온다는 것이다.
동화책에 나오는 머루랑 다래를 사서 보여준 기억도 분명히 있는데...

 

딸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 동생과 장난을 치며 놀다가

친구들이 그리는 그림을 구경하러 다니다가 나름 바빴다.

 

평소 단짝 친구는 그림의 반도 완성을 못 시키고 있었는데 그림 속에 내용이 많았다.
우리 밀을 사용하는 빵집과 빈대떡 집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상대적으로 피자집이 파리를 날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단짝이던 그 친구 역시 맞벌이 부모님이신데다 형제없이 혼자여서 어른 못지않게 독서를 많이 하는 친구였다.

 

“딸!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그림 새로 손질 좀 하지 않을래 !”
“안 할래요!”

 

뭐든 어렵지 않게 일사천리로 해 내는 대신 완벽하게 해 내겠다는 욕심이 없는 딸의 대답에

그만 엄마가 욕심을 접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그림이 상을 탔다는 것이다.

어른의 생각과 달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심사 결과인 모양이었다.

솔밭을 거쳐 3년을 출퇴근 하면서,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늘 우습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재잘재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여 병아리 같았던 딸,
떨어져 사는 엄마와 누나랑 모처럼 함께 보내게 된 하루가 즐거운지
솔밭에 나온 게 즐거운지, 아들은 짧은 다리로도 걸음이 얼마나 빠르던지 날라 다니는 듯해서

하루종일 따라 다니느라 힘든 하루였지만 기억에 남는 하루이기도 했다.

 

            '  아이들은 금방 자라서 제 부모를 중년으로 노년으로 만들어 버린다. '

 

솔밭으로 출퇴근 하는 3년동안 

이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젊은 시절을 반추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 주었다.

현재로는 이 시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이일 것이기에

여기서 세월이 더 흐르면 이 시기 출퇴근 한 시간도 애틋한 그리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