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허연-사십구재, 오십 미터

생게사부르 2016. 8. 9. 00:24

허연

 

 

 

사십구재 



사람들은 이사 가듯 죽었다
해가 길어졌고
깨어진 기왓장 틈새로
마지막 햇살이 잔인하게 빛났다
구원을 위해 몰려왔던 자들은
집을 벗지 못한 채
다시 산을 내려간다
길 고양이들의 절뚝거림이
여기가 속계임을 알려주고
너무나 가까워서 멀었다, 죽음

다음 세상으로 삶 말고
또 무엇을 데려갈 것인가

개 복숭아 꽃이
은총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 낸다.

소문에 돌아 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

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

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정지화면처럼 서서 그

대를 그리워 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 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납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개를 없애

기 위해 인수 분해를 하듯, 한 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 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

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가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시집,<오십미터>. 2016 

 

 

허연

1966. 서울 출생

1991. 현대 시세계 신인상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