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호준 매미보살

생게사부르 2016. 8. 5. 07:42



매미 보살 / 이호준



직업이 곡비(哭婢)다
뭐 할일 없어 울음 팔아 사느냐고 웃지 마라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이들 산에 들에 넘치는 세상
대신 울어 주는 보시는 얼마나 찬란한가
침묵을 천형으로 지고 온 나무도 목메는 날 있어
바람에 꺾이거나 기갈에 지친 아이들을 보며
도끼에 한 생에 넘겨주는 형제를 보며
어찌 강처럼 울고싶지 않으랴
그 속울음 따라 곡비가 달려가는 것이다 
피난 나온 섬처럼 외로운 나무들을 찾아 다니며
오전에는 홀로된 미루나무의 설움을 울고
오후에는 늙은 회화나무의 회한을 우는 것이다
나무의 심장 박동과 하나되어
온 몸이 하얗게 빌 때까지 우는 것이다 
암흑 속에서 기다린 7년을 곡진한 울음에 쏟아붓는 것이다
어두워지면 몇 방울 수액으로 빈 몸 채우며
다시 울어야 할 시간까지 검은 칠판에
눈물겨운 나무들 이름 촘촘히 적어두는 것이다
창고가 넘치는 당신은 짐작도 못하는 경지
부처 대신 울다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