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나와 잠자리의 갈등 1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 앉는 이유가 뭐냐?
내가 이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
나와 잠자리의 갈등 2
잠자리가 빨랫줄에 수도 없이 널려 있다
잘난 놈 한 마리는 바지랑대 끝에도 앉아 있다
나는 바지랑대 끝을 살짝 건드려 본다
순간, 아무 죄 없는 하늘이 갈가리 찢어져
마당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살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 할 때가 있는 법인데
그 무렵 공주에는 잠자리떼가 유유히 날아 다니는 것이다
속이 훤히 비치는 속치마 같은 날개를 단 것들이
빨래가 되어 빨랫줄에 내려 앉는 것이다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아니, 저것들이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나를
겨우 똥파리쯤으로 여기는 거 아녀?
빨랫줄이야 어찌되든 말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바지랑대를 흔들어 버린다
그러자 부근의 잠자리들은 얼씬도 하지 못하고
점점 하늘 속으로 떠나가서는 돌아 오지 않는 것이다
아아, 그때부터였다
세상을 좀더 깊숙히 들여다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햇살의 알맹이처럼 빨갛게 몸을 달군 잠자리떼가
마당 가득히 날아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 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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