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
소리의 각(角)
점점 말이 없어지는 사람은
소리를 모으고 있는 거다
소리의 角을 뜨고 있는 거다
말 대신 침묵에 집중하는 일
그리하여 어룽어룽 고요에 닿는
길 만들어
때로 어둠을 터널처럼 통과하지만
끝내 말을 버렸으므로
차디차게 언 극점들이
소리에 닿는 것,
角이 되는 것,
사랑이여
소리의 개화인 모서리여
폐허라는 것
허물어진 마음도 저리 아름 다울 수 있다면
나도 너의 폐허가 되고 싶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겐가 한때
폐허였다는 것, 또는
폐허가 날 먹여 살렸다는 것,
어떤 기막힌 생이 분탕질한 폐허에 와서
한판 놀고 가는 바람처럼
내 놀이는
지나간 흔적들 빠꼼히 들여다보는
쌈박한 도취 같은 것
콜롯세움은 폐허가 아니었고
상처가 아니었고
먼 훗날 아들의 아들, 손자의 손자가
할애비의 놀이터를 구경하라고
날 무딘 칼로 뚜껑을 썰어 연
단
면
도
시집, < 앤디워홀의 생각> 2004. 세계사 시인선 124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호준 매미보살 (0) | 2016.08.05 |
---|---|
이규리- 엘리베이터 꽃, 보랏빛이라는 것 (0) | 2016.08.04 |
이안- 바닥, 사랑의 형식 8 (0) | 2016.08.02 |
안도현 사랑, 박남수 오수(午睡) (0) | 2016.08.01 |
임창아 주름잡던 시절, 화장 (0) | 201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