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소금쟁이
비 개인 뒤 소금쟁이를 보았다
곧 바닥이 마를 텐데, 시 한줄 쓰다 마음에 걸려
빗물 든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소금쟁이가 뜨자 물은 갑자기 생겨 난 듯 물이
되었다
마음에 소금쟁이처럼 떠 있는 말이 있다
가라 앉지도 새겨지지도 않으면서 마음위를 걸어
다니는 말
그 말이 움직일 때 마다 무심(無心)은 문득 마음이
되었다
잊고 살았다 그러다 열어 본 항아리
그 물의 빈 칸에 다리 달린 글자들이 살고 있었다
마음에 둔 말이 새끼를 쳐 열 식구가 되도록
눈치채지 못했다, 저 가볍고 은밀한 일가를 두고
이제 어찌 마음이 마음을 비우겠는가
내 발걸음 끊었던 말이 마음 위를 걸어 다닐 때
어찌 마음이 다시 등 돌리겠는가
속삭임처럼 가는 맥박처럼 항아리에 넣어 둔 말
누구에게나 가라 앉지 않는 말이 있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발목
발목은 자란다 길 끝에서 잘라 버린 것은
어느 날엔가 돌아 오는 것이다
생시보다 더 생시 같은 헛것의 힘으로
내 앞에 부들거리며 서는 것이다
넘 보아선 안 될 떨어져도 갔어야 할 그 길에
나는 한 묶음 붉은 발목을 버렸다
그 후 나는 어지러운 슬픔을 안고
수십갈래의 길들을 떠 돌았으니
돌아서 저녁 짓는 아낙 같이
生은 나와 눈맞추는 일이 드물었다
발목은 자란다 길 끝에서 잘라 버린 것은
어느 날엔가 돌아 오는 것이다
오래된 슬픔이 건장한 靑年으로 자라
느리고 느린 속도로 녹두같이 선명한 생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숨을 멈추지만 나는 들킨다
그것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음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는 휘청거린다
발목 젖힌 채 걸어오는 저 서늘한 靑年의,
기필코 그 주인을 찾아 오는 내 혈육의
뼈, 그 저린 곳을 더듬으며
나는 뼈저린 고백을 하는 것이다
버린 生이란 이렇게 눈 감아도 보이고
그 그림자, 다시, 내 앞에 부들거리며 서는 것이다
2004년 하반기 <시와 사상> 당선작 중 한편
1969. 부산출생.
2000년 시와 사상
2004.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 너의 반은 꽃이다',
' 구름과 시집 사이를 걸었다'
최근 근황 기사 소개
계간 ‘시산맥’과 지리산문학회는 제11회 지리산문학상 수상자로 박지웅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서큐버스’ 등 5편.
오랜 격론 끝에 박지웅 시인이 제11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시인으로 선정됐다는 후문이다.
심사위원들은 "‘말과 생각이 오종종 잘 모여서 마음을 움직이는’ 시편들이라고 박지웅 시인의 작품을 평했다.
심사는 안도현·이정록·류인서 시인이 맡았다.
수상자인 박지웅 시인은 1969년 부산 출생으로 2000년 ‘시와사상’, 200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와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와 공저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를 펴냈다.
그밖에 어린이를 위한 책 ‘헤밍웨이에게 배우는 살아있는 글쓰기’, ‘모두가 꿈이로다’,
‘꿀벌 마야의 모험’ 등을 쓰거나 옮겼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수혜했고,
201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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