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병일- 나의 에덴, 어머니의 작은 유언

생게사부르 2016. 7. 22. 08:23

이병일


나의 에덴


아무도 닿은 적이 없어 늘 발가벗고 있는 깊은 산, 벌거벗은 아흔아홉개의 계곡을 가진 깊은 산에
홀리고 싶어 아흔 아홉개의 빛을 가진 물소리를 붙잡고 싶어
부전나비 쫓다가 무심하게 건드린 벌집, 나는 또 캄캄하게 절벽으로 밀리고 급기야 날숨
희어질 때까지 물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바위 그늘 밑 어스름을 좋아하는
모래무지가 되었다
도깨비 불과 접신하기 좋은 나의 에덴!  깊은 산으로 가자, 미친것들 푸르러지고, 죽은 것들
되살아나는 깊은 산으로 가자, 산빛에 젖어 갈수록 나는 감감해지고 그림자는 쓸데 없이 또렷해진다

 

 

어머니의 작은 유언

 

 

얘야, 자두꽃이 한창이구나

불면의 신경 마디마디를 지우는

꽃비들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벼락은 캄캄함에 눈먼 것들을 잘도 찾아가는구나

얘야, 생활이 편안 할수록 무르팍이 불편하구나

비를 켜는 악기, 먹구렁이 울음이 보고싶구나

먼데 없는 산사나무 그늘이 불어나듯

내 몸이 몹시 가려워지는구나

나는 캄캄한 무르팍 펴고

앞산에 나가 취뜯고

들깨 모종을 해야 한단다

빈 속이 허도록

데면데면 놀아야 한단다

나는 흙으로 다시 오지 않으려

종교도 없이 지냈단다

얘야, 목이 마르구나

내게 이빠진 호미를 다오

호미 끝엔 환한 세상이 와 있단다

 

 

 

- 시집 아흔 아홉개의 빛을 가진

 

이병일: 1981. 전북진안

 

2005. 평화신문 곰팡이

2007. 문학수첩 신인상 가뭄

2010.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견딜수 없네

시집: 「옆구리의 발견아흔 아홉개의 빛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