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
무연고(無緣故)
고문 당한 말들이
원혼처럼 거듭 돌아와 거울 앞에서
자꾸만 제얼굴을 매만지고 있다
내가 이런뜻이었어? 어쩜,
흉측해라, 머리를
묶었다가
풀었다가 화장을
했다가
지웠다가
결국 눈, 코, 입없는 윤곽으로 돌아와
내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대고
어떻게 좀
어떻게 좀 해보라고
과녁없이 조준점만 난무하는 곳에서
죽을 방법의 다양성과
두루 평등한 고난과
이상을 잊은 자유와
잠든 시간에 몰래 가동하는 몹쓸
차가운 거울
속으로
나는 밤을 뒤집어본다 그것은
구멍 난 양말을 그 구멍으로 뒤집는 것처럼
어쩐지 잔인한 일
뒤집힌 밤은
소리도 고통도 없는데
누군가 거울 밖에서
망치질을 하고 있다
200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3회 형평문학제 시상식(2) (0) | 2016.06.27 |
---|---|
2016. 3회 형평문학제 시상식(1) (0) | 2016.06.27 |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김수영 (0) | 2016.06.25 |
이정록-속울음 (0) | 2016.06.24 |
신병은 말맛, 썩는다는 것 (0) | 201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