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5월에 막내 여동생 시 아버님, 사돈 어른께서 일흔 아홉 , 아쉬운 나이에 돌아 가셨습니다.
선하게 사신 분이고, 회생하실 희망이 없으시다는 걸 아시고, 그 와중에 곡기를 끊으시고 남은 가족들
부담을 덜어 드리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을 버티던 팔순된 시 어머님께서 함께 사셨던 집에 들어 가지를 못 하고
딸네집에 기거 한다는 소식까지 들었습니다. 멍하니 넋을 놓으시고 계시다는 가슴아픈 얘기까지
문제는 불행은 함께 들이 닥친다고 동생이 눈에 이상이 있어 안과를 찾았는데
첫 병원에서 제대로 진단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본인도 병원에 있다보니 " 뇌에 문제가 있어도 그럴수 있지 않나요?" 하고 질문까지 했음에도
안경만 바꾸도록 했던 모양입니다
장례를 치르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원인을 알기위해 검사를 받자마자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뇌에 종양이 생겨 시신경을 압박해서 상이 흐릿하고 이중으로 보이는 등 눈에 이상이 있었답니다.
다행이 악성이 아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의술이 눈부시도록 발달하고 기계장비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뇌를 손 대는 일은 결코 "쉬운 일" 일 수 없으니까요.
막내는 동생이기도 하지만 우리 형제들에게 , 특히 큰 딸인 저로서는 엄마 맞잡이기도 합니다.
두 살, 미처 젖도 떼기 전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밥 끓인 물, 과일 통조림 같은 걸 먹이고
칭얼대며 잠을 못 잘 때는 업고 재우기도 했습니다.
저 외에도, 오빠, 같은 나이의 외삼촌이 번갈아가며 업어주고 재우며 키운 시기가 이년 정도 되네요.
그 때 오빠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에가려 하고 있었고, 외삼촌이나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6남매 중 위 세명이 지방에 살고 있고, 아래 세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
수술 들어 간 첫 날, 준비시간 합쳐 15시간에 걸쳐 밤 늦은 시간까지 수술이 마쳐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습니다.
결국 다 못 마쳐서 한번 더 수술을 해야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심장이 쿵 내려 앉았습니다.
종양이 신경쪽에 바짝 붙어 있어서 의외로 힘든 수술이라고 했어요.
수술실 밖에 대기한 제부와 외숙모가 얼마나 애를 태웠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대로 지방에서
가족 카톡방을 들여다 보며 발을 동동 굴리며 마음이 바짝 바짝 타 들어 갔습니다.
두번에 걸쳐 장장 설흔 시간 가까운 수술이 끝났고 병원 약사협회 일을 맡아 보는 언니가
수시로 상황을 알려 주었습니다만 일단 얼굴을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딸 출국 하는 것 보고 인천공항에서 바로 부천 순천향 병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막 일반 병실로 옮겨 온 직후여서 부어 있었고, 머리 수술한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왈칵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진통제니 항생제 뇌기능 촉진제 등 약을 먹어야 했고, 팔에도 주사약을 주렁주렁 꽃고 있고
가는 팔목에 퍼렇게 멍든 자국이 선명 했지만 그래도 일단 얼굴을 보고 나니
훨씬 안심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경과를 보고 일부 치료가 남았지만 그래도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왔습니다.
최선을 다해 준 의료진, 잘 견뎌 준 막내, 옆에서 마음 조리며 지켜준 제부와
엄마 역할을 해 준 손아래 외숙모님
병원 약사협회 사무국장을 하는 바로 위 언니가 큰 도움이 되었을 테고요
하루를 자고, 뒷날 상황을 한 번 더 보고 일단 내려 왔습니다.
퇴원 하는 날, 집에서 생활을 하루라도 돌봐야 제 맘이 편 할 것 같아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동안 병원밥 먹느라 고생한 동생이나 먹는 것 시원찮았을 제부 밥이라도 한끼 차려줘야겠다는
야심찬 결심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시어머님 덕분에 살아서 음식 솜씨도 없으면서 마음만 앞서서...
어떻든 닭도리탕, 유부초밥 등 잘 먹어 줬습니다.
뒷날에는 큰 오빠와 올케가 자연산 전복을 들고 올라와서 잘게 썰어 전복죽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냉동실에 넣어주고 미역국도 끓였습니다.
외삼촌을 위시하여 수도권 형제들이 함께 모여 막내의 건강 회복을 북돋우기 위한 저녁
만찬시간을 식당에서 가졌습니다.
평소에야 제 각각의 일상이 있지만 힘든일이 있을 때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이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보름 이상 병원생활에 다리힘이 없어서 근처 공원에 걸으러 나갔습니다.
가족들이 나와서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까르르 거리며 뛰어 다녔고,
할머니를 부축하고 할아버지가 운동을 하러 나와 있었고
김포공항 근처라 하늘에는 비행기가 쉴새 없이 날아 다녔으며
연꽃이 피어 있고, 분수에서 간헐적으로 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어요.
한 고비 인생의 터널을 빠져 나와서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재 설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집안의 사랑스런 막둥이 동생, 잘 견뎌줘서 고마워!!!
건강회복과 새로운 삶의 도약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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