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송찬호 분홍 나막신, 장미

생게사부르 2016. 5. 15. 01:22

송찬호


분홍 나막신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 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장미


나는 천둥을 흙 속에 심어 놓고
그게 무럭무럭 자라
담장의 장미처럼
붉게 타 오르기를 바랐으나
천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로만 훌쩍 커
하늘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헐거운 사모(思慕)의 거미줄을 쳐놓고
거미 애비가 되어
아침 이슬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언젠가 다시 창문과 지붕을 흔들며

천둥으로 울면서

떠나갈 수 밖에 없다면,

내 그 장미의 목에

맑은 이슬을 꿰어 걸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