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신병은- 비오는 날, 곁

생게사부르 2016. 5. 11. 00:46

신병은 1

 

 

 

비오는 날 


 

바닥에 누웠던 빗방울이 바람에 기대어 튕겨오른다.

나무처럼 잎들을 펄럭이며 목청 세워 나팔꽃 줄기를 감아올린다.

오랫동안 허공을 떠돌았을  물방울들이

쉴 틈없이 나팔꽃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오른다.

그러자 빗방울이 되지 못한 먹구름은 가지마다 걸려있다 다시 돌아가고

흐릿한 나무는 물의 집을 꿈꾼다.

그런데 나무는 알고 있었을까.

그도 처음에는 물이었다는 것을

나뭇잎 하늘거리는 물결이었다는 것을

바람소리로 흐르고 물소리로 흔들리는 강이었다는 것을

한 없이 깊어지는 수위, 비오는 날 숲 속에는

강을 거슬러 줄지어 하늘로 오르는 나무들의 행렬을 볼 수 있다

 

 

 



 

늦가을 꽃의 마알간 낯바닥을
한참을 쪼그려 앉아본다
벌들이 날아 든 흔적은 없고
햇살과 바람만이 드나든 흔적이 숭숭하다

퇴적된 가루 분분한 홀몸에 눈이가고
나도 혼자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꼼지락대는 순간,
꽃 속 꽃이 내어 준 자리에 뛰어들었다

혼자 고요한 꽃은,
누군가 뛰어 든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꽃은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저도 이내 맑아졌다
곁이리라
화엄(華嚴)이리라


 

1955. 경남 창녕

1989. <시대문학> 등단

전남대 여수 평생교육원 문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