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미향-詩를 굽다, 조말선-정오

생게사부르 2016. 5. 2. 00:35

박미향

 

 

詩를 굽다

 

 

빵틀을 꺼냈다

 

단어를 반죽하여 시를 구웠다

방부제가 싫어서 이스트만 넣었다

달아 오른 대낮이 단어들을 잘 반죽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몇개의 단어들이

잘 풀리지 않았지만

뚜껑을 닫았다

 

부풀려진 시는 푸르뎅뎅 덩치만 컸다

 

여기저기 생긴 기포가 생각보다 우스웠다

먹음직스럽지도 보암스럽지도 않은 저

시!

한나절 던져 두어도 새도 쪼아먹지 않았

 

속 쓰린 시를 설탕에다 한 바퀴 굴렸더니

개미들이 줄을 섰다 저녁이었다

시로 배불린 개미족이 허랑호랑 부풀어 가는 밤

밤이 확장되어 어둠이 우거진다

개미가 기어 간 길이

달다 

 

 

 

조말선


정오


오븐의 채널이 정각에서 멎는다
늦은 아침이 다 구워졌다
꽃나무 밑에서 놀던 적막은
바짝 익었다
밀가루에 버무려진 세상이
거짓말 같이 부풀어 오르는 시각
우체부가
벌겋게 달아오른 우체통을 열고
뜨거운 편지를 꺼낸다
삼십분 전에 넣은 편지가 벌써 익다니
생의 한나절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숙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