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성
저문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 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 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얼은 강을 건너며
얼음을 깬다
강에는 얼은 물
깰수록 청정한 소리가 난다
강이여 우리가 이룰수 없어
물은 남몰래 소리를 이루었나
이 강을 이루는 물소리가
겨울에 죽은 땅의 목청을 트고
이 나라의 어린 아희들아
물은 또한 이땅의 풀잎에도 운다
얼음을 깬다
얼음을 깨서 물을 마신다
우리가 스스로 흐르는 강을 이루고
물이 제 소리를 이룰 때까지
아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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