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릴레이, 잉어

생게사부르 2016. 3. 17. 13:54

유홍준 


릴레이

 

 

나는 뛴다 머리통을 들고 뛰어온 너에게 머리통을 받아
들고 뛴다 이 둥근 바통을 누구에게 건네 주어야하나 아무
도 없는 트랙을 뛴다 밥의 트랙 눈물의 트랙 한숨의 트랙
벗어 나서는 안 되는 트랙을 나는 뛴다 머리통이 식기 전에
눈알이 굳기 전에 누구에게 이 골치덩어리를 건네주어야
하나 나는 트랙을 이탈한다 흰 트랙으로부터 탈출한다 무
단횡단을 한다 나는 이면도로를 거꾸로 뛰어간다 나는 젖
이 큰 여자 젖이 퉁퉁 불어 있는 여자를 찾는다 머리통을
받아들고 앞섶을 풀어 제치고 젖을 먹일 여자를 찾는다 트
랙이 어느새 나를 쫒아와 있다.
 

 

 

                                     <喪家에 모인 구두들> 실천시선 146

 

 

해설:

초 중학교 운동회 때 릴레이는 인기 있는 종목이었다. 릴레이 경주는 실력보다 실수가 승부를

결정하는 일이 종종 있다. 잘 뛰는 것 못지 않게 바통을 잘 넘겨야하기 때문이다. 바통이 다른

손으로 넘어가면 역전되는 일도 자주 있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바통 대신 머리통을 받아 달려야 하는 인생이라는 릴레이 경주라면 어떨까.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아버지가 가던 길로 달리기 싫다고, 목에서 떼어 내 다른 사람에게 줘 버릴 수도 없는 머리통

이걸 목 위에 얹어놓고 어떻게 해야하나.

 

어느날 아침에 눈 떠 보니, 제 집은 이웃집 보다 가난하고 자신은 친구보다 못 생겼으며 엄마 친구의

아들보다 성적이 형편 없다면?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내용물이란게 터무니 없이 초라하다면?

어른들이 하라는 것 다하고 교과서에서 가르쳐 준 대로 충실하게 살았는데 알바트랙과 비정규직 트랙

만 보장된다면? 그게 싫어서 이 시의 화자는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온갖 일탈을 일삼으며 별 짓을 다해

봤지만 어느새 여자가 붙고 자식이 붙어서 어쩔수 없이 " 밥의트랙 눈물의 트랙 한숨의 트랙"을 뛰고 있다

그래도 달려야지 어쩌겠는가. 아, 어쩌자고 시인은 이 구차하고 절망스러운 삶을 이렇게 흥이나고

유쾌하게 썼단 말인가. / 김기택

 

 

 

잉어

 

 

너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지 못해,

 

잉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돈다

 

물고기에게 지느러미가 달린 이유는

입 밖으로

혀가 내밀어지지 않았기 때문

 

돌 위에 새겨진 잉어

탁본 떠서

너를 잊을 때까지 바라본다 겨울

내도록 바라본다

 

너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지 못해

 

입 밖으로 혀가 내밀어지지 않는

잉어의 눈동자는 동그랗다